[진도 여객선 침몰] 제주에서 새 삶 꿈꿨던 5세 권양의 가족

[진도 여객선 침몰] 제주에서 새 삶 꿈꿨던 5세 권양의 가족

기사승인 2014-04-17 21:19:00
[쿠키 사회] 네 식구는 부푼 꿈을 안고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서 계단청소를 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권모(50)씨 가족은 감귤농사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제주로 향했다. 설레던 이삿길은 순식간에 재앙으로 바뀌었다. 선체가 기울고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베트남에서 온 아내(29)는 딸아이에게 서둘러 구명조끼를 입혔다. 아들(6)과 힘을 모아 딸아이를 밀어 올렸다. 그렇게 막내딸만 살아남았다. 네 식구의 꿈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

권씨는 아내와 함께 계단청소를 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힘든 일이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과 어린 딸에게 조금이라도 더 풍요로운 삶을 주고 싶어 했다. 귀농을 하면 서울 생활보다 덜 팍팍할 것 같았다. 젊은 시절 해 봤던 감귤농장 일을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집도, 농장도 구해 놨다. 세월호에는 권씨 가족의 살림살이를 가득 실은 화물차도 실려 있었다.

15일 오전 권씨는 오랜만에 정장을 차려입었다. 4년 동안 다녔던 서울 삼양로 우이감리교회를 찾아 새벽예배를 드렸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권씨는 서울을 떠나기 전 제주에서 시작될 새 삶의 무사와 평안을 기도했을 것이다. 13일에는 주일예배를 드린 뒤 김진홍 담임목사를 만났다. 권씨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기틀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결심을 하고 이사를 간다”며 김 목사에게 인사했다. 김 목사는 “교회 중보기도팀이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교회 사람들은 권씨 가족을 형편은 어려워도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의 가족으로 기억했다. 권씨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주일마다 차량봉사를 했다. 권씨의 아내는 귀화해 한국 이름을 얻었다. 남편은 아내를 깊이 사랑했고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아내는 찬양봉사에 열심이었고 성도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우리말도 금방 익혀 대화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나이 많은 성도들에게도 살갑게 대하며 잘 따랐다.

권씨네 두 아이는 유치부의 개구쟁이들이었다. 주일이면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며 교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권씨 부부와 명랑했던 아들의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에 교인들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우이감리교회 구해성 목사는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두 아이 모두 구김없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있었다”며 “두 아이와 성도님 부부 모습이 눈에 선해서 교인들 모두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아이는 현재 몹시 불안정한 상태다. 아이는 계속 두리번거리며 끝까지 자기를 살리려 했던 엄마와 오빠, 언제나 다정했던 아빠만 찾고 있다. 할머니와 고모가 곁에서 보살피고 있지만 권양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권양 고모는 “아침에 과자 두 개를 먹었는데 다 토할 만큼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며 걱정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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