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암초도 어선도 없었는데 급히 선회한 이유는?

[진도 여객선 침몰] 암초도 어선도 없었는데 급히 선회한 이유는?

기사승인 2014-04-21 00:04:00
[쿠키 사회] 여객선 세월호는 지난 16일 사고 직전 왜 서남쪽으로 급격히 방향을 꺾었을까. 당시 세월호 전방에는 암초나 다른 선박, 어망 등 충돌을 우려할 만한 위험 요인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규명의 핵심인 여성 항해사가 급선회 이유에 대해 구체적 진술을 거부하면서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일단 항해사와 조타수의 조종 미숙이나 화물 불량 적재, 선박 기기결함 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돌발상황 아니었는데 급선회, 왜?=선박자동식별장치(AIS) 분석 결과를 보면 세월호는 16일 오전 8시 48분 37초 맹골수도(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의 해역)에서 오른쪽으로 급선회했다. 세월호는 인천항을 출발해 135~137도 침로(針路)로 운항해 왔다. 사고 지점 부근에서 141도 방향으로 변침(變針·선박 진행 방향을 바꾸는 것)하면 제주를 향하는 항로를 타게 돼 있었다. 5도 정도만 방향을 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월호는 이 변침 지점에서 9분여에 걸쳐 무려 115도를 돌았다. 비상상황에서만 시행한다는 전타(全舵·조타기를 최대인 35도로 꺾는 것)시보다 몇 배나 큰 각도다. 이 때문에 당초 세월호 앞에 거대 부유물이 갑자기 등장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러나 조타실에서 선박을 조종한 3등 항해사 박모(26·여·구속)씨와 조타수 조모(55·구속)씨는 합수부 조사에서 “전방에 충돌 위험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규정대로 변침을 지시했다”고 주장했고, 조씨는 “항해사 지시에 따라 타(舵)를 돌렸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돌아갔다”고 했다. 박씨는 구속된 이후 사고 상황에 대한 구체적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선장 이준석(69·구속)씨는 당시 조타실을 비웠던 터라 구체적 상황은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운전 미숙 혹은 불량 화물 적재 때문=조타수 조씨의 주장대로라면 사고 당시 조타 장치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방향 제어가 안됐을 수도 있다. 실제 현장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타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많이 쏠려있는 등 고장 가능성도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의 세월호 수리일지에도 ‘조타기 운항 중 알람이 계속 들어와 전원을 리셋하며 다시 사용 중이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심재설 한국해양과학기술연구원 박사는 “인천항을 빠져나올 때 급격히 변침할 상황이 많은 데 이상조짐이 없다가 사고 해상에서 갑자기 고장이 났다는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사고 당일 약 6초마다 세월호의 위치를 알려주던 AIS도 오전 8시48분 37초에 멈췄다가 급선회 뒤인 8시 52분 13초에서야 다시 작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3분 30여초 동안 기계적 손상이 있었거나 정전이 됐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부실하게 적재된 화물이 급선회의 원인이란 분석도 있다. 급격한 변침 때문에 화물이 이탈한 것이 아니라 애초 잘못 실렸던 화물이 변침 시 풀려나 한 쪽에 쏠리면서 선박의 균형을 무너뜨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세원 한국해양대 교수는 “화물이 쏠리면 선박이 경사지면서 한 쪽으로 기우는 데 균형이 무너진 뒤에는 항해사가 타를 돌리고 변침하려 해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사고 해역의 조류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세월호는 16일 새벽 진행 방향과 같은 시속 7.6㎞의 남동 방향 조류를 타고 운항했다. 그런데 사고 직전인 오전 8시 38분쯤 맹골수도 인근에서는 북서쪽으로 전류(轉流·조류 흐름이 바뀌는 것)가 시작됐다. 신참 항해사와 조타수가 조류 방향을 잘못 읽고 선박 항로를 과하게 오른쪽으로 꺾었을 수 있다. 합수부 관계자는 20일 “조타수나 항해사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며 “다만 선체가 인양된 뒤에야 정확한 사고 원인이 규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 요청 엉뚱한 곳에=세월호는 배가 기울자 초단파무선통신(VHF) 12번 채널로 오전 8시 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지금 배가 넘어간다”며 조난사실을 알렸다. 해경과 인근 선박에 모두 전파되는 비상채널 16번을 사용하지 않았다. 16번 채널은 공통 대기채널이어서 통신 수화기를 들기만 해도 16번으로 이어지는데 세월호는 사고 지점에서 80㎞나 떨어진 제주VTS와 교신했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인근 선박에 조난신호가 보내지는 비상신호용 ‘디스트레스 버튼’도 누르지 않았다. 해경의 출동시간도 그만큼 늦어지면서 침몰 초기 많은 생명을 구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정현수 기자, 목포=문동성 기자
blue51@kmib.co.kr
지호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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