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간 진료정보 교류 논의 10년째 제자리

병원 간 진료정보 교류 논의 10년째 제자리

기사승인 2014-05-15 10:53:00
“동기부여 전혀 안돼…정부가 강력한 현금인센티브 줘야 실행 가능”

[쿠키 건강] 병원 간 환자 진료정보 교류는 과연 필요할까? 10여년 전 처음 논의를 시작할 때보다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극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실행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분당서울대병원 공동주최로 14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IT 융합을 향한 진료정보교류 활성화 공청회‘에서는 지난 6개월 동안 분당서울대병원, 경북대, 이지케어텍, 드림시큐리티 등의 컨소시엄에서 구축한 진료정보교류 시스템을 선보였다.

진흥원 지원으로 구성된 17명의 위원들은 진료기록요약서(Care Record Summary)의 생성, 전송, 조회 등의 시스템을 시연했다. 병원 간 진료정보의 의미있는 사용을 목적으로 EMR/EHR 시스템의 기능성·상호운용성·보안성 인증기준 가이드라인, 테스트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그러나 병원 현장에서의 체감온도는 아직 미적지근해 보인다. 기술적인 부분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타병원 진료 기록을 신뢰하기가 어렵고, 추가적인 비급여 동력이 없어 실행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현대정보기술 유병일 상무는 “10년 이상 추진해와도 답이 없다. 용어 표준만 해도 10년도 더 걸린다”며 “그나마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공청회를 통해 한 번 듣는 자체가 진료정보 교류 공감대 형성 과정이며, 더 이상 늦출 상황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현장의 공감대가 없는 만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안도 없는 상황. 비트컴퓨터 이남기 부장도 “1999년부터 EMR 정보 교류에 있어 많은 레퍼런스가 나오고 있다. 아직도 환자가 개별적으로 진료정보를 출력해가는 구조인데, 어떻게 해야 다른 병원들이 효율적으로 진료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병원마다 필요한 항목이 다르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표준화 과정을 거쳐야 장점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제언했다. 서울아산병원 신수용 교수는 “기술적으로 교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수년간의 노하우가 있다”라며 “대신, 문제는 병원에서 전혀 동기부여가 안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단언했다.

병원 의료정보 담당자들은 숱하게 많은 오류 수정, 기능 개선 요청 등에 쫓기고 있다.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진료정보교류 시스템에 신경쓸 시간이 없으며, 정부에서 시행하고 싶다면 분명한 '당근'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교수는 “병원이 구축 비용을 투자할 수 있을 정도의 현금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일년에 고작 몇 천만원 수준이면 전혀 구축할 생각이 없다. ROI를 실현하고 충분한 효익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지원하지 않으면 아산병원조차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이제는 필요성에 대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만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의료IT 기업에서도 관심은 많지만, 수익사업으로 연결이 불가능해 참여가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진료정보를 병원이 아닌 제3의 공간에 저장가능한 클라우드 시스템을 허용하고 민간도 참여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뒤따랐다.

컨소시엄을 주도하고 있는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정보센터장 황희 교수는 “진료정보는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클라우드 시스템은 환자들이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클라우드 자체의 이슈가 매우 크기 때문에 진료정보 교류라는 본질적 혜택이 자칫 매몰될 수 있다고 판단해 클라우드는 이번 구축 과정에서 뺐다”며 “국가적인 인프라라고 생각하고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것에 무게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료정보, 환자 것인가 병원 것인가?…민감한 진료정보 보안, 국가표준 구현도 과제

‘진료정보’라는 의미의 혼선도 있었지만, 진료정보 교류는 개인건강기록 PHR과는 다르다는 개념 정립도 분명히 했다. 환자가 동의한 상태에서 타병원 의사가 열람하는 것이며, 환자가 아무 때나 진료정보를 열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황희 교수는 “병원간 진료정보 교류로 이전의 의무기록 사본을 떼던 시간,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고진선처 바랍니다’ 한 마디에 몇 십원, 몇 백원에서 심지어 50장을 복사하면 1만원 등의 비용이 소요된다”라며 “의뢰받는 환자 10명 중 2~3명 중 차트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서 진료정보 교류로 어느 정도 대체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만큼의 편익이 따르는 대신 누군가 정보를 더 쥐게 되고, 보안은 취약해지는 우려도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진승헌 실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잘 변경하지 않는다. 다수의 병원들이 진료정보를 공유하면 그만큼 노출 위험성이 커진다”며 “실제 시스템 구축과 적용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안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 민감한 진료정보를 가진 병원의 보안 취약성 문제가 불거지면 상당한 파장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표준에 대한 필요성도 지적됐다. EMR은 기술적인 표준이 아닌 용어 표준, 내용의 표준을 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의 표준은 구축하되, 세부적인 표준은 우리나라 고유의 표준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경북대 컴퓨터학부 이성기 교수는 “미국에서 표준을 주도하고 있는데, 의료체계가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에 내용적인 표준까지 동일하게 만들 수 없다. 큰 틀에서의 표준을 만들면서 용어, 내용적인 표준도 같이 논의해야 하지만, 의사들의 관심과 참여가 부족한 상황이 아쉽다”고 밝혔다.

이밖에 현장에서는 ‘실행하려면 병원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사본 발급, 검사 수익 대체효과가 필요하다’, ‘정부 부처 컨트롤타워가 없다’, ‘복지부 정보담당자가 너무 자주 바뀐다’ 등의 지적들이 쏟아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임솔 기자 slim@monews.co.kr
송병기 기자
slim@monews.co.kr
송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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