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벌써 한달, 유가족 트라우마 현실화

[세월호 침몰 참사] 벌써 한달, 유가족 트라우마 현실화

기사승인 2014-05-15 22:30:01
[쿠키 사회]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일도 있다. 세월호 침몰 한 달. 시간이 독(毒)이 되어 남은 유가족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그래도 장례를 치를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다. 진짜 갈등은 장례 후 시작된다. 텅 빈 집에 돌아가면 아이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마음은 아이를 기다리고 머리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게 절망하고, 자책하다가 남은 가족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절망·자책, 현실로 나타나는 유가족 트라우마=유가족 심리지원을 전담하는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 센터’의 관계자는 “장례 이후가 가장 힘들다. 힘을 합쳐서 이 사태를 이겨내자던 마음이 힘을 잃고 서로에게 화를 내고 탓을 하는 일이 많아지는 시기”라고 말했다.

남동생을 잃은 한 여학생은 얼마 전 부모에게 “나도 차라리 죽어 버릴 거야”라고 말했다. 부모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괴로웠다. 어머니는 매일 집에서 통곡했다. 밤에는 아버지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심한 자책감도 유가족을 괴롭히고 있다. “내가 아이를 7살에 학교를 보내서 이렇게 됐다. 다 내 탓이다.” “마지막 통화에서 뛰어내리라고 했어야 했다. 내가 살릴 수 있었는데 못 살렸다.” 자책하길 멈추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그만두는 게 중요하다. 심리지원팀은 부모 탓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부부 싸움이 잦아진 경우도 많다. 아내는 울고, 남편은 윽박지르는 식이다. 심민영 국립서울병원 심리적외상관리팀장은 “이럴 때 남편 분께는 ‘마음껏 울고 충분히 슬퍼해야 마음에 굳은살이 생긴다’고 말하고, 아내 분께는 ‘의지가 되는 사람도 만나고 바깥 공기도 쐬는 게 좋다’고 다독이는 게 바로 심리지원”이라고 설명했다.

◇“괜찮다”고 말하면 “도와 달라”는 신호=지난주 초 트라우마 센터의 심리지원팀은 안산의 한 장례식장을 찾았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도움을 주겠노라고 말을 건넸고 발인 나흘 뒤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 여성은 약속 하루 전날인 지난 9일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생명에 지장이 없어 다행이었지만 유족들 심리지원이 지체할 수 없는 시급한 일임을 재확인시킨 사례였다. 센터의 한 관계자는 “보통 발인하고 3~4일 뒤 만나자고 해야 마음을 연다. 초기에 기회를 놓치면 첫 상담 시기는 장례 며칠 뒤로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사고가 벌어진 시점부터 심리지원이 들어가는 게 가장 바람직한데 놓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트라우마 센터는 15일 현재 177가구에 대해 심리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31가구는 거부했다. 유가족이 심리지원을 거부할 때는 “괜찮다”거나 “다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두 경우 모두 도와 달라는 신호라고 보고 있다. 심민영 팀장은 “아무런 심리지원을 받지 않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라며 “‘괜찮다’는 말에 안심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지원팀은 상담을 받고 있는 유가족 가운데 3분의 1을 ‘위험군’으로 판단하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고 우울증이 만성화 될 징후가 역력하다. 일부 가족들은 이런 상황에 생계까지 걱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전박대에도 계속 문 두드려야=남편과 이혼하고 외아들을 키우던 A씨는 장례를 치르고도 집에 가지 못 했다. 아들과 단 둘이 살던 집에 도저히 혼자 돌아 갈 용기가 안 났다. 심리지원팀이 병원에 입원한 A씨를 찾아갔다. 첫 반응은 “필요 없으니 돌아가 달라”였다. 심리지원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꾸 찾아가 얼굴을 익히고 짜증을 내도 받아줬다.

그렇게 계속 문을 두드리니 A씨도 마음을 열었다. 아들과의 추억을 하나둘씩 꺼냈다. “덩치 큰 아들 녀석이 ‘엄마는 꼭 아기 같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다정한 아이였지요.” “우리 아들은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데 차가운 곳에서…억장이 무너집니다, 억장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A씨의 심리지원을 맡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그렇게 함께 마음을 정리해나가는 게 치유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문수정 기자, 안산=황인호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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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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