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유언비어 퍼뜨린 넌 누구냐”… 루머 유포자 실체는?

[세월호 침몰 참사] “유언비어 퍼뜨린 넌 누구냐”… 루머 유포자 실체는?

기사승인 2014-05-16 00:26:00
[쿠키 사회] 세월호 침몰 나흘째인 지난달 19일.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세월호가 한미해군 합동훈련 때문에
정해진 항로를 벗어나 사고가 났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의 ‘항행경보 상황판’과 미국 핵잠수함 사진 등이 근거로 첨부됐다.

파문이 일자 해군이 고소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항행경보 상황판 등은 모두 교묘하게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게시물을 올린 보험설계사 S씨(50)는 검거됐다. 그는 경찰에서 “이슈가 있으면 (허위)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술을 먹으면 충동이 심해진다” “주로 술을 먹고 글을 쓰며 내가 생각해도 병적(病的)이다” 등으로 진술하며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유언비어에 취약한 구조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괴담으로 온 사회가 몸살을 앓았지만 신뢰를 상실한 정부와 언론의 ‘말발’은 유언비어를 잠재우기에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수사기관을 동원한 ‘엄포’ 외에는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사고 발생 후 1개월 동안 유언비어를 유포해 희생자 가족은 물론 수사기관까지 들쑤셔 놓았던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둘 중 한 명은 ‘철부지 10대’= 유언비어와 희생자 모욕·비방과 관련한 수사는 전국 지방경찰청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경찰청 수사국과 사이버안전국이 총괄하고 있다. 15일 현재 192건을 내사 중이며 67명이 검거됐다. 구속된 사람은 방송 인터뷰에서 “해경이 민간 잠수사들에게 대충 시간이나 떼우고 가라고 했다”며 허위 사실을 유포한 홍가혜(26·여)씨 등 3명이다. 검거된 인원 중에 10대가 32명으로 47.7%로 절반에 가깝다. 이 가운데는 초등학생도 2명 있다. 20대는 19명(28.3%)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표 참조>

경찰청 관계자는 “잡고 보면 대부분 멀쩡한 가정의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겉으로 보면 별로 문제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경찰서로 와 선처를 호소하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관심을 받고 싶다는 심리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으며, 일부는 ‘빨리 구조되게끔 구조 당국을 독려하려고’라는 식의 영웅심리가 작용했다. 이후에는 주로 희생자나 유가족을 비방하거나 희생자를 성적으로 모독하는 식으로 변질됐다.

경찰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유언비어는 고(故) 한세영(17)양을 사칭한 구조요청 메시지였다. 사고 하루 뒤인 17일 오전 급속도로 퍼진 메시지에는 식당 칸에 사람이 있으며 빨리 구조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경기도 용인의 김모(20)씨의 자작극으로 밝혀진 이 메시지는 한씨의 신상정보를 SNS에서 파악한 뒤 지도 등으로 교묘하게 조작됐다. 대학생인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구조가 빨리 되도록 하려는 마음”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자신의 페이스북 조회수를 높여 광고 등을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신뢰 붕괴로 생명력 이어가는 유언비어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유언비어는 생명력을 가지고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변종이 발생하고 있다.

다이빙벨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돌려보냈지만, ‘정부가 실종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로 지목됐고 투입이 결정됐다. 결국 실패로 끝나자 정부가 이씨를 압박했다는 의혹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사건 발생 초기에 ‘정부가 잠수사들의 민감한 내용의 인터뷰를 강제로 막고 있다’는 얘기가 돌아 애먹었다. 이런 식의 의혹 제기는 검증하기 힘들다”며 “검증이 어려우므로 생명력이 강하며 이는 유언비어 유포자들이 즐겨 쓰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홍가혜 논란도 비슷하다. 정부가 민간잠수사들 진입을 막았다는 그의 주장은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특혜 논란과 맞물리면서 다시 조명을 받았다. 언딘 잠수사들을 먼저 투입하려고 해군 해난구조대(SSU) 등의 진입을 막았다는 국방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정점을 이뤘다. 홍씨는 정부에 입막음 당했다는 식이다.

성공회대 김서중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식 언론을 통하지 않은 무수한 정보들 중에는 유언비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도 많다는 믿음이 형성돼 있다”며 “정부와 언론이 신뢰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유언비어가 근절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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