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저비용항공사 제주항공에서 ‘성추행 누명’ 논란이 불거졌다. 한 남성승객이 이륙이 지체된 상황에 대해 여승무원을 불러 강하게 항의하자 성추행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다. 제주항공 측은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여승무원이 먼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승객은 명예훼손 혐의로 승무원을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인 A씨와 비행기에 타고 있던 목격자들의 주장, 그리고 제주항공 측 관계자의 해명을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달 27일 방콕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제주항공 7C2252편에서 갑자기 엔진 이상이 발생해 정해진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이륙했다. 승객들에 따르면 당시 기체 내 모든 불이 꺼지고 더운 날씨에 에어컨 작동도 멈췄다. 하지만 기장과 승무원들은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A씨는 “승무원들은 승무원실에서 커튼을 닫은 채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안내방송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한 승객도 “아이가 울고 있어 엄마가 달래주려고 조금이라도 시원한 자리로 옮기려고 하자 승무원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며 “세월호의 악몽이 떠오르기까지 했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제주항공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승객들은 안내방송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기장이 ‘원인을 파악 중이다’ ‘점검 중이다’ ‘몇 분 후에 출발한다’ 등 총 세 번의 기내방송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그에 따르면 승무원들도 승객들 개개인들에게 “상황을 파악 중이니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안전점검 중입니다”라고 설명하고 다녔다.
이어 “승무원들이 커튼을 쳤다는 부분은 보안규정”이라며 “조종실 내부가 노출돼 비행기 전체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커튼을 친 것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승무원들이 해야 했던 행동으로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좌석 이동을 제지한 부분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승객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승객은 독단적으로 좌석 이동을 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승무원이 ‘좌석 이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륙 대기시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승무원들로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승무원들이 이러한 설명을 하면서 아이를 달래던 승객을 옮긴 자리에 한동안 앉게 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승객들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승무원들을 나쁜 사람들로 몰아가기 위해 호도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성추행 논란은 화가 난 A씨가 강하게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A씨는 큰 목소리로 B승무원을 불렀다. A씨는 “승무원에게 이유를 물으니 ‘자신들도 모르겠다’고 답했다”면서 “그런데 제주항공 사무장이라는 직원이 다가와 B승무원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 역시 승객들에게 이유나 상황설명, 미안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뻔뻔한 태도로 기다리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실랑이가 벌어지고 20~30분이 더 지나자 항공기가 동력을 회복해 이륙했다. 단순 해프닝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륙한 지 1시간이 지났을 때쯤 B승무원이 A씨에게 다가와 ‘큰소리를 쳤다’는 이유를 대며 “경고장을 발부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발끈한 A씨는 “승객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사과 방송을 할 것”을 요구하며 맞섰다.
당시 상황에 대해 A씨는 “경고장을 거부하면 성추행범으로 고소하겠다” “아까 (A씨의) 손이 내 허리에 스쳤다” “성추행했다” 등의 말을 하며 B승무원이 자신을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허리에 손이 닿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B승무원으로부터 목적지에 도착하면 성추행범으로 조치를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A씨는 “정작 부산에 도착한 후 B승무원을 불러 경찰에 갈 것을 요구하자 그 승무원은 성추행이라고 한 적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했다면 넘어갈 수 있었지만 끝까지 발뺌해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 앞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려 심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다. 지난달 30일 부산 서부경찰서에 명예훼손 혐의로 B승무원을 고소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제주항공 측은 A씨의 주장이 사실과 크게 다르다는 입장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A씨가 승무원을 먼저 밀쳐버렸다는 얘기를 하던가”라고 반문하며 “A씨는 큰소리를 치며 항의하다 ‘네가 뭔데’라고 말하며 B승무원을 강하게 밀쳤다. 결국엔 기내에서 소란을 피운 것이다. 이에 대해 B승무원은 고성방가와 신체적 접촉이 있었던 데 대해 경고장을 발부하겠다고 안내한 것이며, 그러자 A씨가 ‘내가 밀쳤던 것이 성추행이라도 된다는 거냐’고 반발했다”고 해명했다. A씨가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먼저 사용했다는 게 제주항공 측의 입장이다.
법적 비화로 이어진 것에 대해 제주항공 측은 “조사 결과 승객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하겠지만 승무원의 말이 맞았을 경우 승객에게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또 다른 승객은 인터넷에 ‘제주항공의 엔진고장 꺼짐과 승무원들의 황당한 성추행 논란’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며 당시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외에도 항공사 측에 불리한 탑승객들의 증언이 인터넷에 계속 오르고 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