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뉴욕은 달리고 우리는 멈췄다… 장애인 마크에 숨겨진 비밀

[친절한 쿡기자] 뉴욕은 달리고 우리는 멈췄다… 장애인 마크에 숨겨진 비밀

기사승인 2014-09-25 22:00:55

이틀 전 친절한 쿡기자에서 다뤘던 장애인 주차장 사건 기억나시나요? 2014 인천아시안게임 경기장의 장애인 주차장을 주최 측이 VIP용으로 사용해 논란이 됐는데요. 오늘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사건을 바라볼까 합니다. 주차장에 그려진 ‘장애인 마크’가 주인공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장애인 주차장 사진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휠체어 탄 사람’이 표시돼 있습니다. 손을 앞으로 하고 정지해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장애인 표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양입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라는 건 똑같지만 이 마크는 손을 뒤로 하고 있습니다. 몸은 앞으로 살짝 숙여져 있어서 바퀴를 밀고 나아가는 듯합니다. 인천 아시안게임 경기장에서 쓰인 장애인 마크는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등록된 세계 공용 표지입니다. 1968년 국제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이죠. 뒤에 보여드린 마크는 2001년 한국 기술표준원이 국가표준으로 등록한 그림 표지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국제표준과 국가표준 마크가 이중으로 사용돼 왔던 겁니다.

지하철, 안내소, 화장실 표시까지. 그래픽 심볼은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습니다. 정부는 2001년 이전까지 선진국들이 개발한 픽토그램을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개작해서 사용했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그제야 우리나라 문화에 맞는 그래픽 심볼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앞으로 나아가는 장애인 마크는 그때 탄생한 여러 심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지난 5월 기술표준원은 10년 넘게 사용되던 장애인 마크를 다시 국제표준으로 돌려놓았습니다. 국내 지방자치제 조례와 행정부 지침이 ISO 마크를 쓰라고 규정하고 있다면서요. 장애인 마크를 포함해 14개의 그래픽 심벌이 국제표준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지어지는 공공시설에는 멈춰 서 있는 장애인 마크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픽 심볼은 반드시 국제 규정에 맞춰야 하는 걸까요? 2001년 그래픽 심볼 표준안 제정에 참여했던 허갑중 한국관광정보센터 소장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ISO 규정에는 문화·서비스 그래픽 심볼의 경우 지역적 문화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고요. 우리가 외국에서 만나는 그림 표지가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는 이유입니다.

허 소장은 지난해 11월 그래픽 심볼 표준안 개정을 위해 열렸던 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회의에선 14개의 표지를 국제표준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정책은 원래대로 진행됐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허 소장은 감사원에 책임규명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마크의 모양이 상관없다는 의견도 있을 겁니다. 의미만 통하면 된다고요. 하지만 미국의 뉴욕주는 지난 7월 패럴림픽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역동적인 장애인 마크를 법으로 제정했습니다. 앤드류 쿠오모 주지사는 “장애인 심볼을 보다 역동적이고 매력적으로 바꿨다”며 “장애인 권리를 위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넘어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 겁니다.

꼭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만 복지정책일까요? 멈춰선 장애인 마크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박상은 기자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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