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크고 늘씬한 여성을 보면 어떤 표현이 생각나시나요. “바비인형 같다”는 표현도 많이 쓰죠.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는 여성은 아마 없을 겁니다. 잘록한 허리에 쭉 뻗은 다리, 황금비율을 자랑하는 바비인형은 ‘완벽한 몸매’의 대명사로 쓰입니다.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니콜레이 램은 이 같은 인식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뚱뚱한 인형 ‘래밀리(Lammily)’를 세상에 내놓은 겁니다. 뚱뚱하다고 소개했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바비인형에 비해 약간 살집이 있다는 말이죠. 래밀리는 미국 여성 표준 체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보통의 우리와 꼭 닮았기 때문입니다.
래밀리 피부에는 점과 흉터가 있습니다. 뱃살, 여드름, 셀룰라이트 지방까지 갖고 있죠. 왠지 점점 친근하게 느껴지신다고요? 옷차림도 그렇습니다. 드레스처럼 화려한 옷은 입지 않습니다. 셔츠에 청바지, 운동복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옷차림이 대부분입니다.
색다르지만 대단히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이런 인형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램은 기획과정을 담은 동영상에서 이유를 직접 설명했습니다. 래밀리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었답니다. “평범한 게 아름답다(Average is Beautiful)”라고요.
‘특별한’ 바비인형의 ‘평범한’ 대항마인 셈입니다. 이상화된 몸매 기준을 따르는 세태에 대한 반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통한 걸까요.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선주문만 2만 건이 넘었다고 합니다. 공식 홈페이지 등을 통해 25달러(약 2만8000원)에 판매되고 있죠. 더 정확한 구매 정보를 찾아보려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국내 네티즌들도 반기고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래밀리와 비교해보니 바비가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알겠다” “바비는 단순히 인형 같은 느낌인데 래밀리는 현실 훈녀(훈훈한 여성)같다” “훨씬 보기 편하다. 좋은 현상이다”라는 등의 호평들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한편 씁쓸한 마음도 듭니다. 획일적인 미의 기준에 사로잡혔던 우리의 편협함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비율 좋고 날씬한 몸에만 열광하진 않았는지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싸늘한 시선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래밀리가 전하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에 함께 귀 기울여 볼 때입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