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년(영조 38)에 일어난 ‘임오화변’은 조선 왕조 500년 역사 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사도세자가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숨을 거둔 이 사건은 조선 역사애 대해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도 사도세자는 다 알 정도로 유명하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은 무수히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사도세자가 현대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양극성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사도세자의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정신의학자가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진단을 내린 것은 처음이다.
양극성 장애는 과하게 기분이 들뜨는 조증과 가라앉는 우울증의 감정 상태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질환이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창윤 교수팀은 사도세자의 언행이 상세히 기록된 한중록 등의 문헌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신의학적 건강 상태를 진단한 결과, 우울증과 조증이 반복되는 정신증상에다 기분장애의 가족력까지 배제할 수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사도세자는 양극성 장애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3일 밝혔다.
김 교수는 이런 내용의 논문을 ‘신경정신의학’ 최신호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13세(1748년)부터 14세(1749년)까지 우울증상, 불안증상과 함께 환시(일종의 환각 증세)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또 17세(1752년)부터 19세(1754년)까지는 ‘경계증(잘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불리는 불안증상을 가끔씩 보였던 것으로 관찰됐다.
20~21세(1755~1756년)에는 우울감, 기분과민성, 흥미 저하, 의욕저하를 보이며 자기관리도 소홀히 하는 등 기분장애로 인한 정신기능 저하가 동반됐고, 자살생각과 함께 실제 행동도 나타났다. 연구팀은 사도세자가 “아무래도 못살겠다”며 우물에 뛰어들려 했던 이 시기를 ‘우울증’ 소견으로 진단했다.
특히 처음으로 고양된 기분, 기분과민성, 난폭한 행동이 나타난 21세 때 6~7월에는 조증으로 볼 수 있고, 이는 8월에 다소 호전됐다가 9월에 다시 악화되거나 우울증으로 바뀌는 양상을 보였다.
22세 때 6~9월에는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이 뚜렷했다. 판단력 저하와 함께 부적절한 행동을 지속한 것은 조증에 해당한다고 연구팀은 해석했다. 사료에는 이 시기에 사도세자가 특별한 이유없이 내관과 나인 여럿을 죽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증상은 23~24세(1758~1759년) 때 잠시 나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25~26세에 다시 재발해 폭력적인 행동이 두드러졌고, 부적절한 언행과 강박증상, 피해의식에 따른 환시 등의 정신병적 증상도 의심됐다.
사도세자는 26세 때인 1761년 10월부터 1762년 5월 사망할 때까지 조증과 우울증 증상을 번갈아 보이며 기이한 언행과 폭력적 행동을 반복했던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이 같은 사도세자의 정신 이상 행동에 ‘가족력’이 관찰됐다는 것도 이번 분석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김 교수는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가 기분장애 증상을 겪다 자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봤고, 영조의 이복형제 중 희빈 장씨의 아들인 경종도 우울증상이나 정신병적 증상을 앓았던 것으로 진단했다. 또 숙종은 정상의 범주 내에서 다소 감정 기복이 있는 성격으로 파악했다.
항상 신뢰성 논란이 따라다니는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대해서는 “정신병적 증상에 들어맞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어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해 기술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현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