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베일(40)을 미남 배우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올해로 연기경력 29년차다. 수십여 작품에 출연했고 그만큼 많은 배역을 경험했다. 그런 베일이지만 이번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속 모습은 왠지 색다르다.
소재부터 가볍지 않은 작품이다. ‘엑소더스’는 구약성서 출애굽기를 다뤘다. 영화는 기원전 1300년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다. 이집트 지배 아래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사는 히브리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극중 베일은 이들에게 자유를 찾아주는 구원과 같은 존재, 모세 역을 맡았다.
내용은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세와 람세스(조엘 에저튼)의 대결이 큰 줄기다. 이집트 왕궁에서 형제처럼 자란 두 사람은 람세스가 파라오에 오른 뒤 사이가 벌어진다. 모세가 히브리 핏줄이라는 비밀이 밝혀지며 갈등은 극에 달한다. 람세스는 냉정하게 그를 버리고 유배 보낸다. 죽을 고비를 넘긴 모세는 가정을 꾸리고 10년을 평범하게 산다. 그러나 신의 계시는 필연적으로 찾아오고, 그는 동족을 구하러 다시 이집트로 향한다.
베일은 극의 중심이 돼야 했다. 모세라는 역할이 주는 부담감 역시 상당했을 것이다. 모세는 신과 소통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신의 뜻을 순순히 받들지만은 않는다. 끊임없이 신에게 반문하고 갈등한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땐 인간적인 고뇌에 시달린다.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이다. 하지만 베일은 완전히 배역에 빠져든 듯 보였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시커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눈빛으로 연기했다. 내면연기에는 깊이가 있었다. 초반 눈길을 끌었던 잘생긴 외모는 점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많은 부분을 내려놓은 베일은 더 큰 무게감을 얻었다.
배우의 연기는 좋은 연출을 만나 빛을 발한다. ‘글래디에이터’(2000년) ‘로빈 후드’(2010) 등으로 유명한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엑소더스’에서 연출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초반 나오는 카데시 전투와 클라이막스인 ‘10가지 재앙’ ‘홍해의 기적’ 등 장면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수준 높은 CG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154분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중간 스토리 전개에 지루한 부분이 있다. 내용을 압축해 보다 긴장감을 높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3D로 구현된 스크린 속 이집트 제국은 한번쯤 경험해볼만 하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