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엔터테인먼트에게 2014년은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배급을 맡은 영화 ‘명량’이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죠.
이런 CJ가 오는 17일 개봉되는 영화 ‘국제시장’에 거는 기대는 남다릅니다. 연말연시 가족 단위 관객들을 겨냥한 훈훈한 내용이라서 그런지 개봉까지 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CJ는 벌써부터 홍보에 여념이 없습니다.
국제시장은 6·25전쟁을 겪으며 아버지를 잃고 가장이 된 덕수(황정민)가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덕수는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다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그뿐인가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절름발이가 돼 돌아옵니다. 그 시절 우리 아버지들의 희생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죠.
영화는 박정희 정권 시절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전 파병 등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힘겨웠던 시대적 상황과 가족애를 버무려 감동을 극대화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고개가 갸우뚱 해집니다. 50년 전 아픔을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인 CJ가 왜 최근의 일은 외면하고 있을까요.
CJ는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한 영화 ‘소수의견’ 개봉을 기약 없이 미뤘습니다. 강제철거 현장에서 죽은 소년의 아버지가 의경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벌어지는 법정공방을 다룬 영화인데요. 지난해 6월 촬영을 마쳤지만 개봉 시점은 안갯속입니다.
급기야 동명 원작소설을 쓴 손아람 작가는 지난달 5일 페이스북에 “CJ가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뒤 개봉을 1년간 연기하다 결국 영화를 폐기처분했다”며 “정권에 보내는 수십 억 원짜리 화해 메시지”라고 비판했습니다. 인터넷에는 “이 회장 재판에 영향이 미칠 것을 고려한 게 아닌가?” “정권 눈치 보기”라는 말들이 나왔지요.
CJ는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배급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율 중”이라며 폐기처분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또 “소수의견 말고도 개봉을 기다리는 다른 작품들이 많다”면서 “영화 촬영이 끝났다고 바로 개봉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설명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촬영을 마친 국제시장은 벌써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촬영 순서대로 개봉작이 결정되는 건 아니겠지요. 다른 판단기준이 있는 걸까요?
CJ는 그동안 “제일 잘 하는 일이 문화”라고 자부해왔습니다. ‘문화를 만든다’는 슬로건으로도 유명하고요. 이 회장 역시 평소 문화기업으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합니다. 순수하게 문화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말이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