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한 인터넷 웹툰 사이트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국무총리상도 수상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접속이 안 됩니다. 알아보니 정부기관이 접속을 차단했다는 군요. 이게 무슨 일일까요? 온라인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 이야기입니다.
지난 2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레진코믹스의 일부 콘텐츠에 사람의 성기가 노출돼 있고, 음란물 유포가 의심된다며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시정요구)를 내렸다가 하루 만에 이를 번복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날 오후 레진코믹스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불법 유해 사이트 차단 페이지인 ‘warning.or.kr’로 강제로 넘어가는 상황이 발생했죠.
방심위 관계자는 26일 해당 사건에 대해 “일부 콘텐츠에 성기가 직접 노출되고 성행위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음란성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공공의 안전과 복리를 위해 긴급히 조치할 필요가 있을 때 사전고지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있어 레진코믹스 측의 ‘의견진술’ 절차 없이 진행했다고 덧붙였죠.
하지만 방심위 측의 말은 어폐가 있습니다. 레진코믹스는 철저하게 정부의 가이드라인대로 성인인증을 받은 성인에게만 웹툰을 서비스합니다. 또 미래부가 주관하는 2013년 글로벌 K스타트업 최우수상과 구글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죠. 무료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웹툰을 유료 시장으로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에는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다름 아닌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을 충실히 이행한 모범 사례라는 겁니다. 2014년까지 레진코믹스에 상을 줬던 정부가 2015년에는 하루아침에 사전 경고 없이 대한민국 전 국민에게서 레진코믹스의 접속을 전면 차단한 겁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를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세움의 정호석 변호사는 “이번 방심위의 조치는 시정 요구 전에 의견진술 기회를 원칙적으로 부여하도록 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위반되어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다”며 “음란성 판단에 있어서도 기존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에서 판시 한 기준에 어긋나는 판단을 한 것으로 실체적 정당성도 결여된 것으로 판단된다. 재심의 결과에 따라 강력한 대응도 고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번 일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방심위는 10명 내외의 인사로 구성돼있는 작은 조직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조직이 어쩌면 사적일 수도 있는 기준에 의해 한 인터넷 사업자를 일방적으로 검열하고 국민으로부터 차단한 겁니다. 극소수 인원의 의견만으로 대한민국 인구 5100만 명의 인터넷이 일방적으로 재단된 것이죠.
한 네티즌은 “이번 일은 정부가 인터넷 검열을 심의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에 새로운 법안 발의 움직임도 보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국회의원은 정부의 무분별한 인터넷사이트 접속차단 권한을 제한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914444)을 같은 날 대표발의했죠. 김광진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 결과 선진 민주주의 국가 중 인터넷에 대해서 이토록 광범위하게 불법정보를 규정하고, 접속차단을 실시하는 국가는 대한민국 뿐”이라며 “모호한 규정과 자의적 판단으로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무분별하게 침해해온 현행 접속차단 제도를 이 기회에 철저하게 개선하겠다”고 법안 발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rickonb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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