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일 하고 싶어요. 시켜만 준다면 어떤 업무든 잘할 자신 있어요”
이제 사회생활에 발을 담그려는 20대 초반 취업준비생의 각오가 아니다.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많은 70대 취업 지원자의 하소연이다. 지난 22일 서울 성북구청에서 열린 취업박람회는 일자리를 구하는 노년층의 방문으로 가득 찼다. 그 누가 자신이 고단한 노후를 보내리라 예상했을까? 구직을 희망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는 기대감보다 회의감이 짙게 느껴졌다.
“준비는 돼 있는데…”
이날 무료로 진행된 이력서 사진 촬영 행사에 줄을 선 68세 김모씨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내 또래 할머니들이 학교 급식실 같은 곳에 일주일 중 세 번 나가 한달 20만원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거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 하지만 나는 다리가 아파 할 수도 없다”며 “몸만 성하면 청소일이라도 하고 싶은데 다리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픈 자식 한 명과 같이 사는데 병원비 생각하면 돈은 벌어야겠고. 지금도 파지 줍다 여기서 직업 알선해 준다기에 왔다. 너무 살기가 힘들다. 파지 줍기로는 생계유지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실제 그의 다리 밑에는 방금 까지 주어온 빈 박스와 폐지가 가득했다. 점심도 못 먹고 일을 하다 왔다는 그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박람회 부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던 71세 송모씨 역시 “일을 하고 싶어서 경기도에서 왔는데 나이 때문에 걸린다. 아직 건강한 데 써 주는 곳이 없다. 힘든 일도 상관없다. 나이 제한만 좀 늘려줬으면 좋겠는데…. 요즘 일흔은 옛날 같지 않고 젊다. 일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까 너무 답답하다. 마음은 젊었을 때랑 똑같다”며 말을 줄였다. 그는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올해 칠순을 맞이한 박모씨는 “취업 안 되는 건 젊은 사람이나 우리나 똑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부에서 주는 기초연금도 세금 내면 끝이다. 대책이 있으면 좋겠다. 한달에 얼마씩 주는 것보다 일자리를 원한다. 집에서 노느니 왔다 갔다 하면서 일하는 게 낫다. 젊은 사람들 임금은 최저 임금제에 맞춰서 줘야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 없다. 집에 있으면 많이 답답하고 아직 힘도 있고 꿈도 있는데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더 주눅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취업박람회에 참여한 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65세까지 이력서를 받고 있지만, 지원자는 대부분 70~80세가 넘는 분들”이라며 “나이 때문에 채용이 쉽지 않은 걸 알면서도 생계가 급하다 보니 문을 두드리시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고령의 지원자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력이다. 회사 차원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는 젊은 분들을 원한다. 경비 일도 나이가 많으면 입주민들이 꺼려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면접을 보다 보면 ‘돈보다 일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많다. 방금 오셨던 82세 어르신도 ‘난 아직 건강하고 일을 하고 싶다. 급여는 안 받아도 좋다’고 말씀하셨다”며 “하지만 60대 이상은 4대 보험비도 많이 나가고 65세 이상은 고용보험도 해당 안 된다. 그것 때문이라도 고용을 기피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너무 고령의 지원자가 오면 돌려보내기도 쉽지 않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게 전부다. 우리도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도중에도 관계자는 분주했다. 구직 확답을 받기 위해 전화를 건 노년의 지원자와 실낱같은 기회를 잡기 위해 마른 손으로 멋쩍게 우유를 건네는 노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취업은 치열한 전쟁이었다.
노인 빈곤율 50% 육박, OECD 회원국 1위의 오명
지난 1월 임완섭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부연구위원이 보건복지 이슈&포커스에 발표한 ‘최근 빈곤 및 불평등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보사연의 ‘2014 빈곤통계연보’와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한 결과 2013년 노인 빈곤율은 48.0%였다.
이는 전체 빈곤율 13.7%보다 3.5배나 높다. 전체 빈곤율은 지난 2012년 14%에서 0.3% 포인트 하락했지만, 노인 빈곤율은 2012년과 2013년이 같았다.
또 인구 유형별 빈곤율을 봤을 때 노인층과 함께 1인 가구의 빈곤율이 심각한 편이었으며 1인 가구의 빈곤율은 47.2%로 전년 48.1%보다는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2012년 기준 48.5%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회원국 평균의 4배나 된다. 그러나 이에 비해 연금 소득대체율은 최하위권 수준이다.
지난 3월 한국노동연구원의 ‘노인의 빈곤과 연금의 소득대체율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12년을 기준으로 한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5.2%로 OECD 회원국 평균인 65.9%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는 주요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70∼80% 수준을 크게 밑도는 수치며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전용호 교수는 23일 “노동시장 문제뿐만 아니라 가족에 의한 지원, 사회적 돌봄의 기능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에 노인 빈곤율이 급격하게 개선될 것 같진 않다”며 “그래서 ‘공적연금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의 공적연금은 기본적으로 취약하다. 국민연금은 노인들이 젊어서 사회에 기여 했음에도 사각지대가 많고, 소득 하위 70%에 기초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20만원이란 액수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가 기본적으로 연령차별주의가 매우 심하다. 65세가 넘어서도 건강하고 사회생활 경력이나 능력 등 훌륭한 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객관적 실력에 따라 채용하기보다는 ‘노인이니까 안된다’고 생각해 우선적으로 배제시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며 “외국 같은 경우에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취직할 때 나이를 명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도 있다. 나이에 따른 노인의 사회적 차별이 우리나라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취업을 원하는 노인은 더 많아질 텐데 그런 분들을 사회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면 인적낭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노인들의 일자리가 경비, 청소 등 한정적인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사실, 노인 일자리 취업률은 우리나라가 30% 정도다. 선진국 같은 경우 10%밖에 되지 않는다. 강요된 노동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 절반이 빈곤층인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워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며 “현재 정부의 노동, 일자리, 연금 정책이 등이 모두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족 기능, 부양의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생각하면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