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악의 연대기’ 손현주 “연기하는 나? 밖에선 똑같아요”

[쿠키人터뷰] ‘악의 연대기’ 손현주 “연기하는 나? 밖에선 똑같아요”

기사승인 2015-05-14 18:34:55
사진=호호호비치 제공

[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영화 ‘악의 연대기’에서 눈빛만으로 분위기를 휘어잡던 최창식 반장은 어디 갔을까.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배우 손현주(50)에겐 그 사이 극중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장을 고수하던 최 반장과 달리 손현주는 티셔츠 차림에 캡모자를 눌러썼다.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뒤 사건을 은폐하면서 불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스크린 속 표정도 없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명배우의 여유일까. 무거운 작품 분위기를 이미 훌훌 털어낸 듯 했다.

그러나 손현주가 입을 열 때면 여지없이 겸손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연기의 신(神’)이라 불리는 손현주지만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늘 걱정스럽단다. 백운학 감독의 복잡한 지시사항을 소화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도 토로했다. 그가 타이트롤인 영화임에도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란다.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열심히 소화한 후배들의 공을 오히려 치켜세웠다. 멋진 배우이자 좋은 선배, 손현주다.


-영화 보고 어떠셨나.
“제가 여쭙고 싶어요. 어떻게 보셨어요?”

-재미있게 봤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전 두렵죠 뭐. 사실 언론시사회 때가 제일 두려웠어요. 백운학 감독이 (배우들에게) ‘의연하게 걸어 나가자’고 했는데 다들 죄인처럼(웃음). 왜냐면 채점 받는 시간 같아서요. 앞으로가 더 두렵죠.”

-작품 나올 때마다 항상 그렇게 걱정을 하시나.
“드라마도 그렇지만 영화 같은 경우는 더 해요. 제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의 돈 모아서 하는 거니까요. 제발 이번엔 손익분기점만 좀 채웠으면 좋겠는데…. 이건 제 진심입니다(웃음).”

-시나리오 때문에 작품 선택했다고. 찍으면서는 어떠셨나.
“시나리오는 재밌게 봤는데 만들긴 어려웠던 작품인 것 같아요. 그 안에서 표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짊어져야 할 것들도 너무 많았고요. 극중인데도 내 동료들에게 얘기를 못하고 계속 감추고 은폐하다 보니 더 힘들고 괴로웠어요. 그러면서 고독감을 느끼고…. 백운학 감독은 또 엄청난 디렉션을 요구하셨죠.”

-예를 들면 어떤 식이었나.
“디테일한 디렉션이었어요. 감정을 드러낼 듯, 감출 듯. 근데 그걸 또 눈빛으로만 하래요. ‘샷이 눈으로 들어갑니다. 앵글이 벗어나니까 많이 움직이시면 안돼요. 움직이지 마시고 눈으로만 분노·슬픔·좌절·배신·배반 등 여덟 가지 감정을 표현해주세요.’ 그래서 내가 ‘(감독이 직접) 한 번 해보시라’고 몇 번을 얘기했어요(웃음). 내가 (백 감독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는데 ‘할아버지 한 번 해봐요. 신경질 나 죽겠네’ 그랬죠. 그렇게 또 웃고 넘어가고.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주연이라 더욱 부담 됐겠다.
“그런데 이번엔 제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안 돼요. 왜냐면 더 부담스러우니까(웃음). 마동석씨가 참 잘 해줬어요. 촬영 시작 한 달 전부터 영화에 나오는 형사들 7~8명이랑 늘 같이 다녔어요. 형사들끼리의 작은 행동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해줬어요. 최다니엘씨는 짧지만 임팩트가 강했고요. 박서준씨는 나름의 역할을 잘 해냈죠. 저한테 맞아서 죽었던 애(단역)들까지 모두 각자 자리를 꽉꽉 채워줬어요. 그래서 ‘악의 연대기’가 잘 나왔던 것 같아요. 제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같이 나눠 써야지 혼자 독박 쓰면 큰일 나요(웃음).”

-제작사 대표가 시나리오 보고 주인공에 바로 손현주를 생각했다던데.
“거짓말이겠죠 뭐(웃음). 몇 사람 중 하나지 뭐.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시나리오나 방송 대본이나 ‘아유, 손현주씨를 위해서 썼습니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방송할 때 그런 거 많잖아요. ‘이거 손현주씨 아니면 안 됩니다. 손현주씨 놓고 썼어요.’ 뭘 놓고 써. 언제 봤다고 놓고 써(웃음).”

-이번 영화에선 대사가 많지 않더라. 연기하기 더 힘들지 않던가.
“리액션이 원래 더 힘들어요. (속으로) 안고 가야하는 것들이 힘들 수밖에 없죠. 근데 배우가 하는 일이 뭐예요. 그거죠. 그게 어려우면 ‘악의 연대기’를 하지 말았어야지(웃음). 그럼 또 다른 사람한테 가서 그랬을 거예요. ‘선배님 두고 썼습니다.’ (일동 폭소)”

-기자간담회에서 ‘평범한 얼굴이라 촬영 때 더 열심히 뛴다’고 했는데.
“그건 맞는 것 같아요. 두 배로 뛰어야 해요. 저 같은 경우는 뛰기도 열심히 뛰고 땀도 더 많이 더 흘려야 돼요. 그래야 ‘좀 뛰는 것 같네?’ 싶을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정우성 같은 사람들은 그냥 뛰어도 그림이 나오잖아요. 근데 내가 그렇게 해보세요. 안 된단 말이죠. 저 같은 경우는 ‘시작!’ 하면 죽기 살기로 뛰는 거예요(웃음).”

-추격신에서 정말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정신적인 게 더 힘들더라고요. 이번에 새삼 다시 느꼈어요. 체력적인 피로는 며칠 쉬면 회복되잖아요. 어디 부러지지만 않으면요. 근데 정신적으로 피곤한 건 못 견디겠더라고요. 만약 내가 현실에서의 최창식이라면 못 견뎠을 것 같아요. 그걸 어떻게 견뎌요. 뭘 감추고 행동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거 1주일도 못 살 것 같은데요?”


-작품마다 그 인물에 완전히 빠지시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이상하게 그렇게 해왔네요. 근데 스릴러가 정신적으로 더 많이 지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돌아봤더니 SBS ‘추적자’(2012) 이후로 제가 약간 쥐색 같은 느낌의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SBS ‘황금의 제국’(2013) ‘쓰리 데이즈’(2014)도 의도치 않게 밝은 역할은 아니었고요.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숨바꼭질’(2013)도 그랬죠. 저희 엄마·고모·이모 팬들한테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이 들어요(일동 폭소). 바람피우는 남편 역할 많이 할 때는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이 ‘그러지마!’ 그러시면 ‘다신 안 그럴게요’하고 지나가고 그랬는데(웃음). 이제 좀 그립네요. 엄마의 손길을 너무 많이 떠나온 것 같고.”

-팬들 아직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다.
“기다리고 계시죠. ‘빨리 돌아와라.’ 집나간 자식 기다리듯이 빨리 돌아오라고(웃음).”

-다시 편안한 역할을 하고 싶은가.
“그럼요.”

-최근 스릴러물 출연이 잦았는데.
“지금 찍고 있는 게 또 스릴러예요. (현재 영화 ‘더 폰’을 촬영 중이다.) 근데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제가 뭐 스릴러 전문배우도 아니고, 어머니 품이 그리우니까 이제 가야죠. 근데 엄마하고 여자는 다른 게, 애인은 떠나면 그냥 가잖아요? 엄마·이모들은 떠났다가 다시 오면 감싸줘요. ‘너 왜 그랬어. 멀리 나가지 말라고 얘기했잖아. 왜 이렇게 야위었어’ 이게 엄마의 마음이거든요. 엄마들의 힘이 지금은 필요하다(웃음).”

-브라운관서 인정받은 뒤 스크린으로 넘어올 때 고민 없었나.
“가끔 왔다 갔다 했어요. 장르는 안 가려요. 굳이 ‘드라마 잘 되고 있는데 왜 영화를 했냐’고 하면 할 말 없죠. 좋은 시나리오를 재밌게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이제 또 엄마 품이 그리워지면 다시 가는 거죠. 아니면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적인 영화를 해보든지. 근데 엄마 품으로 갈 수 있는 제일 쉬운 방법은 주말드라마랑 일일드라마예요. 미니시리즈하면 안돼요.(일동 폭소)”


-신참 때는 정직했지만 점점 때가 묻는 최 반장. 실제 본인에게 비춰본다면.
“저 역시 사람이다 보니 (그럴 수 있죠). 그래서 늘 대학로를 그리워해요. 흐트러질까봐, 혹은 내 스스로가 손현주가 아니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에요. 그럼 안 되잖아요. 연기하는 손현주가 있지만 (작품 밖에) 나와선 똑같은 거죠 뭐. 별 다른 거 없잖아요. 되도록 내 안에선 ‘나답게 살자’는 철저한 기준이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망가지거든요. 그럼 연기도 거짓말이게 되죠. 아마 금방 티가 날 거예요.”

-연극 무대가 많이 생각나는 건가.
“(그렇지만)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후배들을 끌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마치 트라우마처럼 대학로에 가요. ‘끌어주면 좀 낫지 않을까.’ 근데 그것도 사실 내 타협이죠.”

-배우로서 초창기와 현재 달라진 점이 있다면.
“책임감이 좀 달라졌죠. 예전엔 제가 선배들을 모시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후배들과 같이 지내고 있으니까요. 특히 약속을 지키는 데 있어선 내가 흐트러지거나 잘못되면 안 돼요. 신용과 신뢰인데 나부터 무너지면 다 무너지게 되잖아요. 책임감이 커진 거죠.”

-실제 정말 다정다감한 선배라고 들었다.
“선배보다는 그냥 동료나 친구라는 개념이어야 (사이가) 더 재미있고 좋아져요. 굳이 내 입으로 내가 선배라고 안 해도 자기들이 부르잖아요. 저한테 형이라고 하지 ‘야’라고 하진 않잖아요(웃음). 그럼 된 거죠 뭐. 편하게 지내야 결국 편한 작품이 나와요. 연기 선배면 뭐 얼마나 됐다고 제가 그러겠어요. 연기 대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애들 보면 친동생 같고 귀엽잖아요. 마동석 얼마나 귀여운데요(웃음). 같이 노는 게 제일 재밌어요. 그럼 촬영도 유쾌하게 빨리 끝나요.” kwonny@kmib.co.kr
권남영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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