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역사 속 인물들을 변주해 온 이야기는 많다. 당장 평일 저녁시간대에 지상파 방송만 틀어도 실존 인물들을 다룬 사극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야기들은 때로는 흥미롭고, 즐겁거나 슬프거나 화려하거나 웅장하다. 이야기를 꾸며내다 못해 판타지까지 접목시킨 사극들은 달콤한 사탕처럼 시청자를 끌어당기지만 ‘사도’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탕평과 출생신분 때문에 평생 열등감과 완벽주의 사이에서 살아온 영조(송강호)가 어여삐 여기는 세자(유아인)는 영특하고 재주가 많다. 하도 총명하여 두 살 남짓할 때부터 선생들을 붙여 공부를 시켰다. 세 살이 된 세자가 또박또박 선생들 앞에서 책을 읽는 모습에 영조는 부모로서의 기쁨을 느끼지만 이는 곧 독이 된다. 완벽함을 강요하고 그에 맞지 않으면 역정을 내는 왕은 영특한 세자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존재다. 왕 이전에 사람이고 아버지이지만 아들에게도 왕이어야 하는 영조와, 세자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아들이길 원하는 세자는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영화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7일을 기본 골조로 삼고 시간을 넘나들며 두 사람이 쌓아 온 감정의 깊은 골을 더듬어나간다. 역사적 사실이나 상황은 중요하지 않다. 사도세자의 경우 광인설과 당파싸움희생설로 역사적 해석이 분분한 인물이지만 영화는 사도에 대한 평가보다는 왕의 아들로서의 세자의 인간적 갈등, 아버지인 왕으로서의 영조의 고뇌를 그리는 데 집중한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인 ‘왕의 남자’ ‘황산벌’ ‘평양성’ 등은 상상이라는 양념을 듬뿍 친 맛깔스런 사극이었으나 ‘사도’에서 이준익 감독은 최소한의 양념만을 쓴 채 좋은 재료의 맛을 그대로 뽑아냈다.
항상 좋은 연기로 호평 받는 유아인이지만 ‘사도’의 유아인은 한층 더 놀랍다. 러닝타임 내내 광인과 사람, 아들과 아버지를 오가는 유아인은 사도의 다양한 면들을 다채롭게 내보인다. ‘베테랑’으로 천만배우가 된 데 그치지 않고 한 단계 성큼 올라섰다. 송강호의 연기 내공 또한 빛난다. 9분이나 되는 독백 신은 이준익 감독의 연출력과 송강호의 연기력이 결합해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초반에 “너 지금 무엇하니?” 라고 묻는 얄미운 영조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애절함이다. 천천히 산을 오른 다음 정상에서 뚝, 바닥으로 단숨에 추락하는 듯한 감정선은 관객에게 절로 통곡과 오열을 이끌어낸다. 다만 이준익이라는 이름에서 기대할 법한 화려함이나 인스턴트적 재미는 없다. 후반에 나오는 배우들의 노인 분장 또한 극의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12세가. 16일 개봉. rickonb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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