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대한민국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막론하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여배우를 꼽는다면 누가 있을까. 2015년 최고의 여배우 라인업에는 정말 많은 이름이 올라가겠지만, 그 중에서도 라미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이 하고, 자주 하는데, 잘 한다.
1975년 강원도 고한 탄광촌에서 태어난 라미란은 학창시절 오락부장을 도맡아 하던 ‘끼순이’였다. 학교에 지각했던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 볼 수 있는 직업이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골에 극장이 있을 리 없었고, 영화 한 편 보지 못하고 십대를 보냈지만 라미란은 그렇게 홀린 듯이 연기를 선택했다.
서울예술대학교를 93학번으로 입학했다. 2005년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에게 “그래서, 그 새낀 죽였어?”라고 되묻던 감방 동료 수희가 대중들이 기억하는 라미란의 첫 롤이다. 이름 없는 단역으로 시작해 여기저기 많이도 출연했다. TV나 영화에는 아름답게 생긴 여배우들만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 연극 무대를 목표로 삼았고,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었다. 28세에 결혼해 예쁜 아이를 낳았지만 나이 서른에 다시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 그게 ‘친절한 금자씨’였다. 금자씨 이후 들어온 역할들은 대부분 아줌마들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아줌마 다 해봤다”고 말할 만큼.
라미란은 자신의 얼굴 때문에 브라운관에 진출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라미란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돼 시청자들을 대변했다. 젊고 예쁜 배우들보다 ‘좋은’ 얼굴이었다. 2013년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배신과 모략의 주역 라 과장과 ‘미쓰 와이프’의 넉살 좋은 미선은 분명 다른 인물이지만 한 사람이다. 최근 방송 중인 tvN ‘응답하라 1988’에서는 짜증이 많지만 이웃들에게 넉넉함을 베푸는 정팔이 엄마가 됐다가도, 영화 ‘히말라야’에서는 엄홍길에게 “나도 항상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매번 내가 아닌 무택이를 데려가 속상했다, 내가 여자라 그럴까 하고 자책도 했다”고 마지막의 마지막에야 털어놓는 열정적인 산악인 조명애를 연기한다. 그리고 그 얼굴들은 모두 온전히 라미란의 것이다.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라미란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다. 개봉한 영화도 바로 챙겨보지 못하고, 한 작품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작품을 찍고, 새로 캐스팅된 영화가 기사화된다. 힘들 만도 한데 남자 배우들보다 넘치는 체력으로 촬영장을 압도한다고 ‘히말라야’를 함께한 배우 김인권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라미란은 한 인터뷰에서 “자리에서 못 일어설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자리에서 못 일어설 때까지, 라미란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보고 싶다.
코너명 : 자랑할 이, 형 형兄, 어찌 내奈, 횃불 거炬. ‘어둠 속 횃불같이 빛나는 이 형(혹은 오빠, 언니)을 어찌 자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뜻으로, ‘이 분 내 거’라는 사심이 담겨있지 않다 할 수 없는 코너명. rickonb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