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단비 기자]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다양한 이모티콘의 사용이다. 대화 중 적절한 이모티콘 사용은 로봇 같은 말투에 감정을 입힌다. 배고플 때 “배고프다”라는 문장 대신 볼이 움푹 패인 얼굴의 이모티콘을 보내고, 화가 났을 때 입에서 불을 뿜는 이모티콘을 보낸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얼마나 배가 고픈지, 얼마나 화가 나는지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다.
이모티콘은 분명 IT 세대에 필요한 감정의 매개체다. 그러나 이모티콘이 다양해질수록 진짜 내 감정을 담은 문장은 사라지고 없다.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적어 보내는 이맘 때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해 작성하는 그 순간만큼은 머릿속에 그 사람의 얼굴로 채워진다. 몸이 좋지 않은 그에는 건강을 기원할 것이고, 새로운 도전을 앞둔 그에게는 성공을 기원하는 문장을 쓸 것이다. 최근 받은 새해 인사 중에 이모티콘 하나만 온 경우도 드물지 않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자 뒤로 동물들이 현란한 춤을 춘다. 어떤 문자에서는 복을 기원하는 복주머니 하나가 날아왔다. 그 주머니엔 돈도 꽂혀있다. 동물 댄서를 보낸 상대도, 복주머니를 보낸 그 사람도 모두 새해 인사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모티콘이 화려할수록 사적인 글은 줄고 진짜 마음은 대화창 밖을 나가버린다.
2G폰을 쓸 때 사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은 키패드의 기본 문자표를 조합해 만드는 허술한 표정들이 전부였다. 갈매기 웃음, 골뱅이 표정… 작은 막대기를 조합하기도 했다. 단출했다. 이모티콘이 글을 대신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문장은 길어졌고 생각은 깊어졌다. 동시에 감정은 배가 됐다.
며칠 전 우울증을 취재하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만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울증으로 내원한 어린 학생들 중에는 지나치게 SNS와 이모티콘, 온라인 캐릭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의사는 이모티콘 사용이 잦을수록 진짜 속마음은 숨기려는 경향이 짙어진다고 말했다.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해야할 때 애교 섞인 표정의 이모티콘이 이를 대신하고 긴 대화로 용서를 구해야할 때 우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고민과 말을 잠식시켜 감정의 정화를 가로막는다. 우울증 청소년이 메신저 대화에서 글 대신 이모티콘 사용이 많은 점을 되새겨 봐야한다. 오늘은 대화창에 익살스런 이모티콘 대신 감정에 충실한 한 문장을 써볼 참이다.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