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잊은 걸까.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17일 청와대에서 제9차 무역투자 진흥회의를 주재했다. 신산업 투자지원을 위해 규제시스템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 모두 물에 빠트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할 규제만 살려두도록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세월호 사건의 상처는 지금도 남아있다. 유가족들,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실종자들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도 그렇다. 2014년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서 세월호 실종자들을 호명하며 눈물을 흘렸던 박 대통령이, 그 눈물이 연기가 아닌 이상 이를 모를 리가 없다. 더구나 최근엔 단원고 ‘존치 교실’ 보존 갈등으로 연일 언론에 세월호가 언급되고 있다.
당연히 대통령으로서 어떤 취지를 전달하기 위해 비유를 하더라도 세월호 사건을 다시 연상케 하는 ‘말실수’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후나 박 대통령의 말실수는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1989년에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 이후 이런 일기를 썼었다.
“수년간 맺혔던 한을 풀었지만 내 마음은 몹시 울적하다. 왜 태어났을까. 태어나지 않았으면 마음의 고통도 없었을 것이 아닌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침울한 생각뿐이다. 80년대는 다시 돌아보기도 싫다.”
박 대통령은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 아픔은 생각도 아프게 만든다. 생각이 아프면 표현도 부족해진다. 그러다 보니 생각을 나누는 ‘토론’은 회피한다.
힐링캠프 프로그램에 나와서 ‘꿀벌’을 ‘벌꿀’로 말실수하는 것은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후보 등록 첫 날 ‘국회의원 사퇴’가 아니라 ‘대통령직 사퇴’라고 말한 실수는 지도자로서의 신뢰를 의심받게 된다.
지도자가 말실수를 자주 하는 것을 부시즘(Bushism)이라고 한다. 문법을 자주 틀리고 일관성이 없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박 대통령 말실수의 내용과 깊이는 단순한 부시즘 이상이 된 지 오래됐다.
‘조하리의 창(Hohari’s window)’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창문(window) 모양으로 비유한 것이다.
1955년에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조셉 러프트(Joseph Luft) 교수와 UCLA 하링턴 잉햄(Harrington Ingham) 교수가 ‘조하리의 창’ 이론으로 대인관계 이해도에 관한 모델(The Johari window, a graphic model of interpersonal awareness)을 발표했다. 4가지로 구분된 창문에는 생각(thought), 감정(feeling), 경험(experience), 행동(behavior), 동기(motivation) 등이 담겨있다.
첫 번째 창문은 열린 영역(open area)이다. 이 영역은 나도 나를 알고, 남도 나를 아는 영역이다. 그래서 가장 깨끗하다. 두 번째 창문은 눈 먼 영역(blind area)이다. 타인은 나에 대해서 아는데, 나는 나를 모르고 있는 영역이다. 세 번째 창문은 숨겨진 영역(hidden area)이다. 남은 나에 대해서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 영역이다. 마지막 네 번째 창문은 미지의 영역(unknown area)이다. 즉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 남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박 대통령이 복면 시위자들을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비유했을 때 국민도 모르고 박 대통령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unknown area)인 무의식에 대해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이번의 ‘물에 빠트려놓고’는 어디에 포함될까. 눈 먼 영역(blind area)으로 판단된다.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나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건만 들어도 놀라는 유가족과 국민은 박 대통령이 국가의 리더로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국가비상사태 때 콘트롤타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박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로봇의 느낌(feeling)과 대통령으로서 많은 국가의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실상 ‘나 몰라라’하는 행동(behavior), 국민과 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고, 과거에 오랫동안 살았던 집(청와대)에 단순히 한 번 더 살고 싶다는 귀향본능적 동기(motivation),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박 대통령 스스로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여야가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국민 누구나 알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시하는 것에 지쳐있는 이 시점에, 또 다시 나온 박 대통령의 ‘말실수’에 대한 실망은 단순히 말꼬리잡기식 비판을 넘어선 의미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소통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진심으로, 단 한 번이라도 수첩과 프롬프터를 보지 말고 ‘미안합니다’로 시작해서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감사합니다’로 마칠 수 있는 연설을 들어보길 희망해본다.
이재연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상담사회교육전공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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