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이세돌 9단에게도 바둑 팬들에게도 꿈같은 일주일이었다.
‘인류 대표’로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세기의 대국을 치른 이 9단의 최종 성적표는 1승4패다. 우승도 놓쳤고 11억원의 상금도 알파고에 넘겨줬지만 이 9단은 혼신을 다한 명승부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인터넷은 ‘포기를 모르는 투혼’ ‘아름다운 패배’ ‘1승4패로 진 것이 아니라 1승4패로 이긴 것’이라며 열광했고, 최근 침체에 빠진 한국 바둑은 일약 부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9단은 현재 제주도에 머물고 있다. 아내 김현진씨와 딸 혜림 양과 함께 16일 오후 여행을 떠났다. 기러기 아빠였던 이 9단은 6일 가족들과 재회했지만 알파고와 대국으로 인해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올해는 이 9단과 김씨가 결혼한 지 10주년 되는 해다. 이 9단이 알파고에 내리 3연패를 당한 12일이 바로 두 사람의 열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알파고에게 거둔 1승에 대해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평생 잊지 못할 승리”라고 했던 이 9단은 가족여행을 떠나면서도 여전히 미련이 많은 듯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9단은 마지막 제5국 패배를 두고 “아쉬웠다. 이기고 싶기도 했고,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초반에 나쁘지도 않았다”라면서 “울컥했다. 울면 안 되니까 안 운 거다. 울고 싶지, 진짜”라고 밝혔다. “5국을 돌아보면 분명히 ‘이렇게 두면 좋겠다’는 느낌이 있는데도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자꾸 다르게 두고 있더라. ‘알파고가 이렇게 두지 않을까’ 의식했다. 바둑을 떠나 수에 대한 인간적인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한다”고도 했다.
알파고에 대해선 “스타일이 특이해서 놀랐다. 사람이 두기 힘든 수이기도 하다. 그 수들이 결정적이지는 않았다”면서 “그래도 인간이 봐도 2국의 37수는 괜찮아 보인다. 이런 것도 컴퓨터가 둘 수 있구나 생각해서 놀랐다. 미학적인 수였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일단 초반에 붙으면 안 되더라. 싸움을 할 필요도 없고, 하면 안 된다. 국지전으로 가면 거의 안 된다고 봐야 한다”면서 “바둑판이 초반에는 넓다. 경우의 수를 따지지 못하게 돌을 널찍하게 벌려 놓으면 알파고가 당황하더라”고 공략법을 전했다.
이 9단은 “알파고는 완벽하지 않다. 처음에 제가 불리하게 출발한 건 맞는 것 같다. 그 다음부터는 제가 부족했다”면서 “알파고는 계속 발전한다. 그러나 알파고가 지금 상태로 멈춰있고 우리가 어느 정도 연구한다면 알파고가 우리 프로기사들에게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지금은 알파고의 (인간과 너무 다른) 스타일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물론 (인간이 아닌) 제가 당한 것”이라고 했다.
일약 국민적 영웅이 됐다는 질문에는 “제가요? 졌는데요 뭘.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많다”면서 “실력은 어쩔 수 없지만, 심리적인 부분(마인드 컨트롤)에서 부족했다.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고 겸손해했다.
일각에선 나온 알파고와 재대결 추진에 대해선 “구글은 지금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알파고가 멈춰있어야 재대결을 하든지 할 텐데, 그렇지 않다”면서 “솔직히 저보다는 다른 기사가 붙어야 한다. 이번 대국도 정환이(한국랭킹 1위 박정환 9단)가 했으면 이기지 않았을까. 제가 많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코너명: 자랑할 이, 형 형, 어찌 내, 횃불 거. ‘어둠 속 횃불같이 빛나는 이 형(혹은 오빠, 언니)을 어찌 자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뜻으로, ‘이 오빠 내 거’라는 사심이 담겨있지 않다 할 수 없는 코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