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배트맨 대 슈퍼맨’ 잭 스나이더는 마블의 스파이일까… 트로피 된 원더우먼

[쿡리뷰] ‘배트맨 대 슈퍼맨’ 잭 스나이더는 마블의 스파이일까… 트로피 된 원더우먼

기사승인 2016-03-23 14:32:55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어린 시절부터 맹목적으로 좋아했던 영웅 배트맨과 슈퍼맨이 대결한다.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대결 구도다. 두 영웅의 이름이 한 번에 언급되기만 해도 덮어놓고 보러 갈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이상하다. 개연성이 없다.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Batman V Superman : Dawn of Justice·감독 잭 스나이더)’는 디씨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부흥의 열쇠로 불렸지만 시작부터 문이 열리지 않아 열쇠 수리공을 불러야 할 판이다.

외계에서 온 크립톤 성인 슈퍼맨은 선한 일을 하지만 그의 초인적인 능력 때문에 덩달아 휘말리는 일반인들도 많다. 18개월 전 슈퍼맨이 메트로폴리스를 침공한 크립톤 성인들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 힘에 휘말려 무너진 빌딩들과 죽은 사람들은 어찌할 수 없다. 무너진 빌딩 중에는 웨인 파이낸스도 있었고, 웨인 파이낸스의 주인 브루스 웨인은 슈퍼맨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신을 칭하는 외계인이 어느 순간 타락하게 되면 가장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외계 물질 크립토나이트로 슈퍼맨을 공략하고 싶어 하는 과학자 렉스 루터가 있다. 렉스 기업의 주인인 렉스 루터는 인도양에 떨어진 크립토나이트를 메트로폴리스에 들여와 슈퍼맨 공략에 나서려 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화끈한 두 영웅의 액션만을 기대하고 간다면 관객에게 충분한 보답을 할 수 있는 영화다. 액션은 박진감 넘치고, 영웅들의 대결과 초능력은 할리우드 기술력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과 영화의 개연성을 기대하고 간다면 다소 실망스럽다. 배트맨이 된 브루스 웨인은 정의에 매몰돼 2차원적인 사고조차 어려워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영화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부모님의 총격 사망사고가 트라우마가 됐다고는 하나, 오로지 슈퍼맨만을 위해 보여주는 집념은 악을 처단하기 위한 정의보다는 또 다른 악으로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하려던 선한 일에서 비롯된 피해에 고뇌하는 슈퍼맨 또한 입체적인 캐릭터는 되지 못했다. 굳게 닫힌 입과, 로이스 레인 곁만을 맴도는 슈퍼맨은 자기변호를 팽개치고 인류를 구하는 데 골몰한다.

151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영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전반에 깔린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설명은 불친절하기 그지없으며, 심지어 잘 하지도 못한다. 그 와중에 차기작까지 예비하느라 너무 바쁜 이 영화는 그 긴 러닝타임 동안 결국 액션을 제외한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일반인인 배트맨이 초인인 슈퍼맨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그림은 이미 예상된 일이지만 배트맨이 자신의 대의를 순식간에 바꾸는 모습을 보고 있는 관객은 당황스럽다.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유머감조차 정의를 위해 내버린 ‘배트맨 대 저스티스’에 남은 것은 액션 뿐이다.

시오니스트로 알려져 캐스팅 자체에 논란을 일으킨 갤 가돗의 경우 분량을 논하기도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에 그의 캐스팅 때문에 영화를 보기가 망설여졌던 관객이라면 서슴없이 영화를 관람해도 될 듯 하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갤 가돗이 연기한 원더 우먼을 히든 카드로 내보이고 싶었겠지만 원더 우먼은 키 카드가 되기는커녕 흔히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들에서 여성 히어로들이 그렇듯 트로피 그 이상 이하도 되지 못했다. 차기작에서는 조금 다른 활약을 보이기를 기대하고 싶지만 잭 스나이더가 차기작을 연출한다면 어떨까. DC 영화들이 그렇듯 쿠키 영상은 없다. 스토리는 어찌 됐건 뻥뻥 터지는 액션과 박진감, 슈퍼맨과 배트맨의 훌륭한 비주얼만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적극 추천할만한 영화다. 12세가. 24일 개봉.
rickonbge@kmib.co.kr
이은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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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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