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사냥’ 추격 스릴러가 한국적 정서를 만났을 때

[쿡리뷰] ‘사냥’ 추격 스릴러가 한국적 정서를 만났을 때

기사승인 2016-06-24 11:39:06


사람이 다니지 않는 깊은 산에서 노파가 금맥을 발견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부패 경찰은 금을 차지할 욕심에 수상한 외지의 엽사들과 산을 오른다. 사냥을 하는 척하며 금맥의 존재만 확인하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산행은 우연한 사고와 예상치 못한 방문객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다. 산에 오른 불청객들은 가파른 산을 누비며 서로의 욕망과 상처에 총을 겨누며 서로를 사냥한다.

추격 스릴러 영화 ‘사냥’은 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영화는 산에 오른 인간과 움직임과 그 안에서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는다. 영화 속에서 ‘사냥’은 눈을 가리는 커튼 같은 장치일 뿐이고, 실상 그들이 사냥용 총을 들고 산에 오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영화 속 누군가에게 산은 상처의 근원이기에 정면으로 맞서야할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노름빚을 청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숨겨진 욕망의 땅이다. 산에 오른 사람들은 ‘현재’를 사는 인물들이고 이들은 현재의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사냥꾼 영감과 외지의 엽사들이 산을 오르고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기 전 까지 영화는 현재와 과거의 서사를 섞어 관객에게 제시한다. 폐광 입구에서 제사를 지내는 노파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관객은 영화의 주 무대인 산에 얽힌 사연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노파의 하나뿐인 손녀는 동네에서 팔푼이로 놀림 받는 정신지체아이며 아이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사냥꾼 노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관계에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비밀은 관객에게 단편적인 대사나 과거 회상으로 설명된다. 노인의 대척점에 서있는 비리 경찰 또한 한국 영화에 무수히 등장하는 나쁜 경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에서 쉽게 짐작되지 않는 유일한 부분은 추격전이다. 추격 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답게 서로를 사냥하듯 몰이하며 추격하는 장면은 박진감 넘치게 연출됐다. 긴장감을 고조하는 음악과 함께 총구를 겨누고 산을 누비는 장면을 보다보면 어느새 함께 산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숨이 차다.

추격 장면 속 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과거의 사건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노인 사냥꾼 기성 역할을 맡은 안성기의 연기는 그의 이름 석 자가 가진 힘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 쌍둥이 비리 경찰 역할 명근·동근 역을 맡은 조진웅의 연기는 차갑고 서늘해 추격의 긴장을 증폭시킨다. 전형적인 캐릭터를 섬세하게 표현한 한예리와 권율의 연기도 돋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장르적 쾌감과 몰입은 오래가지 않는다. 추격전 곳곳에 ‘한국적 정서’를 삽입하면서부터 영화는 급격하게 힘을 잃는다. 서사를 위해 친절하게 첨부된 과거의 이야기들이 독이 되는 셈이다. 등장인물들이 산을 배경으로 움직일 때는 긴장이 고조되고 음습한 활력이 넘치지만, 산 아래의 사람들이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면 추격의 맥이 끊긴다. 인물을 쫓아 자연스레 숨이 찼던 감정도 덩달아 느슨해진다.

산 아래에서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손 반장(손현주)을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은 너무나 쉽고 빈번하게 ‘이 산’에 대해 말한다. ‘오늘이 어떤 날인데 그 산을 오르나’ 혹은 ‘이 산은 원래 이렇다’는 식이다. 영화의 문제점은 이런 대사와 안일한 과거 회상 장면에서 기인한다. 영화는 산이라는 공간에서 서로를 사냥할 수밖에 없는 인물의 감정과 욕망을 설득력 있게 쌓아 올려 보여주는 대신 ‘원래 그런 산’과 ‘과거의 비밀’에 기대어 모든 감정과 서사를 설명하려 든다. 장르적 쾌감에 집중하기 보다 한국적 정서를 선택한 것이 이 영화의 아쉬운 지점이다. 15세 관람가. 29일 개봉.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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