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갑질'은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짜증·예민'과 같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 3일부터 13일까지 10일간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1,0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사회 최근 건강이슈 관련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25%가 갑질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갑질을 한 후 ‘짜증과 예민’(45.8%), ‘화’(32.1%), ‘집중의 어려움’(23.3%), ‘분노와 억울함’(19.1%) 등과 같이 정신건강에 해로운 심리적 불편 증상을 겪었다고 답한 반면, ‘통쾌함과 해방감’(12.2%), 자신감과 자아존중감’(10.7%), ‘즐겁고 들뜬 기분’(5.3%) 등 긍정적인 심리상태를 경험한 경우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해 경험자 71.3%는 갑질을 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건강을 위태롭게 한다고 답해, ‘갑질’이 본인에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갑질 피해자, 스스로 위축, 적극적인 대처방안 세우지 못해
갑질 피해 경험자의 심리적 문제는 더욱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과반수인 66.2%는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분노와 억울함’을 느낀 경우는 81.7%에 달했고, 이어 ‘화’가 난 경우는 67.3%, ‘짜증과 예민’을 겪은 것은 65.1% 였다.
하지만 막상 갑질 피해 경험자의 대처는 소극적이었다. 심리적∙정신적 갑질을 당한 후 ‘그냥 참는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57.3%로 나왔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가 43.1%, ‘그 일을 무시해 버린다’가 38.4%, ‘그 일을 잊기 위해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한다’가 35.4%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청한다’는 답변은1.6%로 미미한 수준으로, 전체적인 ‘회피’ 경향을 보였다.
이번 조사에 대해 이해국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부단장은 “갑질 피해로 인한 심리적∙정신적 피해 등에 대한 인식이 낮다 보니, 상황을 축소시켜 내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라며 “이러한 부정적 경험을 해소하지 않을 경우, 정신건강 상 또 다른 폐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인식 변화와 법∙제도적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로 상하관계에서 발생, 업무상 갑질은 흔해
갑질이 발생하는 상황과 유형에 대해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상사와 부하 관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답했다.
갑질 가해 경험자의 갑질 경험은 주로 ‘상사-부하 관계’에서 46.6%로 가장 높았고, ‘고객-직원 관계’가 33.2%, ‘연장자-연하자 관계’는 28.6% 순으로 응답했다. 피해 경험자는 ‘상사-부하 관계’가59.5%, ‘고객-직원 관계’가 34.9%, ‘고용기관-비정규직/계약직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응답이 31.1% 순으로 답했다.
갑질의 가해 유형에는 ‘업무관련 갑질’이48.9%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접적∙은밀한 갑질’은22.9%, ‘개인적∙대인간 갑질’이20.6%, ‘조직적∙환경적 갑질’ 16.8% 순으로 응답했다
갑질 피해 유형에 대해서도 ‘업무관련 갑질’이 55.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조직적∙환경적 갑질’이 37.2%, ‘개인적∙대인간 갑질’이29.5%, ‘간접적∙은밀한 갑질’이 26.9% 순으로 응답해 가해 경험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다만, 가장 심하다고 생각하는 갑질에 유형에 대해서는 ‘조직적∙환경적 갑질’ 문제가 심하다는 의견이 27.4%로 가장 높았고, ‘심리적∙정신적 갑질’이 23.7%, ‘업무관련 갑질’은 14.2%, ‘개인적∙대인간 갑질’이 12.5%로 나타났다.
즉,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갑질은 '업무 관련 갑질'이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지만,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갑질은 '조직적∙환경적 갑질'과 '심리적∙정신적 갑질'이었다. 이는 업무와 관련한 갑질은 어느 정도 수용가능하나, 억압적∙모욕적∙권위적이거나 정서적 학대나 사생활 비난, 성적 공격 등의 갑질에 대해서는 용인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