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영화 '덕혜옹주'는 신파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쿡리뷰] 영화 '덕혜옹주'는 신파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기사승인 2016-07-28 15:12:37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이 한 줄의 설명만으로도 쉽게 비극성을 지닌다. 나라를 잃은 왕족이 강제로 타국 유학길에 올라 오랜 시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신파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덕혜옹주’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영화다. ‘덕혜옹주’는 역사적 상황과 개인의 비극에 기대어 비탄을 쥐어짜는 대신 거대한 풍랑에 휩쓸리다가 끝내는 지친 개인의 감정을 관조한다. 

영화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옹주의 일대기를 다룬다.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덕혜옹주(손예진)는 고종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나 가족과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만, 고종 승하 후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덕혜옹주는 끊임없이 고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번번이 일제의 힘에 가로막힌다. 그런 덕혜옹주 앞에 어릴 적 동무이자 정혼자였던 김장한(박해일)이 일본군 장교로 위장해 나타난다. 덕혜옹주는 귀국을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장한의 도움을 받아 영친왕과 함께 상해 망명을 하려 한다.

영화에서 덕혜옹주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국가적 대의가 아닌 개인의 감정이다.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머니의 안위 때문이었고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결정적인 이유도 어머니다. 덕혜옹주가 돌아가고자 했던 곳은 고국이기도 하지만, 평생을 그리워한 어머니의 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국가라는 거대한 힘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나 욕망과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치닫는 덕혜옹주를 멀리서 지켜본다. 충분히 감정을 끓여 관객을 울릴 수 있는 장면에서도 온도를 더하지 않고 덜어낸다. 영친왕 망명 작전과 맞물린 독립운동 거사의 결정적 순간에도 비장함을 강조하는 대신 개인의 긴장과 두려움을 비추는 식이다. 이러한 시선과 결 덕분에 ‘덕혜옹주’는 그저 그런 신파의 함정으로 빠지지 않는다. 영화의 전체적 결을 살펴보면 개인의 상처와 아픔, 관계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가진 허진호 감독의 작품이란 점이 자연스레 상기된다.

‘영친왕 망명 작전’으로 명명되는 사건에 도달하기까지 서사의 흐름은 밀도가 높다. 내내 담담한 자세로 일관하는 영화지만 사건이 시작되며 나름의 긴장을 선사한다. 하지만 사건 이후 리듬을 잃고 마무리되는 것은 아쉽다. 덕혜옹주가 타이틀롤임에도 불구하고 역할 자체의 매력이 돋보이지 않았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출연 배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비극적 상황에 내던져진 덕혜옹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손예진의 열연은 놀랍다. 박해일은 영화의 또 다른 축으로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친일파 악역 한택수를 연기한 윤제문은 전형적인 악역을 전형적이지 않게 연기하며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라미란과 잠시 얼굴을 비추는 고수, 김대명, 안내상의 연기도 훌륭하다.

‘덕혜옹주’는 예고와는 다른 영화다. 예고를 보고 애국의 정서가 끓는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 있고, 예고를 보고 실망했던 관객이라면 담백하고 섬세한 영화에 만족할 수도 있다. 12세 이상 관람가. 다음달 3일 개봉.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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