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인세현 기자] 지난달을 기준으로 올해 임금체불액 규모가 1조 3000억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죠. 최근 대기업인 이랜드가 근로기준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임금을 떼어먹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 큰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불거지자,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 착취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명확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구인공고가 올라와 또다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다음달 19일 개최되는 제26회 서울가요대상(이하 서가대) 스태프 모집 공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통비·일급여 지원하지 않습니다’, '자원봉사활동 증명서 발급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업무에 따라 공연관람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주최 측이 제시한 스태프의 업무는 행사장 안내 및 질서 유지, 입장객 안내, 좌석 등급별 입장 통제, 주차 통제, 레드카펫 질서 유지 등입니다. 이외에도 스태프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죠. 공고를 확인한 사람들이 ‘현대판 노예를 찾는 것이냐’고 비판하자, 주최 측은 ‘업무에 따라 공연관람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항목만을 삭제하고 다시 공고를 올렸습니다.
대중문화 행사 개최 시 행사 진행을 돕는 스태프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때때로 자원봉사 형식으로 스태프를 모집하기도 하죠. 이 또한 최소한의 기본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구인공고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서가대 측은 교통비는커녕 자원봉사활동 증명서조차 발급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런 대가 없이 시상식을 진행할 무보수 인력을 찾는 것입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체납 문제가 대두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러한 시대착오적 모집공고 게시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팬심’ 때문일 것입니다. 정확히는 ‘팬심’을 이용하려는 계산이죠. 서가대 스태프 구인공고에는 무대에 오르는 가수의 팬이라면 좋아하는 뮤지션을 보기 위해 기꺼이 무보수 노동을 감행할 것이라는 악의적인 전제가 존재합니다. K팝 행사에서 이런 행위는 빈번하게 일어나곤 합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 관람을 볼모로 팬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들이 관행처럼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서가대를 후원하는 서울시 측은 서가대 무보수 구인공고 논란에 대해 즉각적인 조처를 했습니다. 청년들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한 서울가요대상을 후원하는 것은 서울시의 정책 방향과 어긋난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서울가요대상 후원명칭 사용 승인을 철회하고 서울시 로고 및 후원 명칭 사용을 즉시 중단하겠다”고 알렸습니다. 당당하게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려 한 주최 측에 실질적 제재가 가해진 것이죠.
이에 서가대 조직위원회는 SNS와 홈페이지에 “스태프 모집은 내부 사정으로 인해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서울가요대상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관행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이번 일이 공론화되고 일부 시정된 것은 팬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함께 분노하고 항의한 덕분이 아닐까요. 일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여겨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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