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부추기는 학교시험… 성취기준 위반 ‘수두룩’

선행학습 부추기는 학교시험… 성취기준 위반 ‘수두룩’

기사승인 2017-01-03 08:28:13

사교육과열지구 18곳 수학 시험지 35개 분석

32개 ‘성취기준 위반’·27개 ‘선행교육 유발’

[쿠키뉴스=김성일 기자]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현수(가명·15)는 지난해 1학기 기말고사 수학 시험지를 받아들고 의아했다. 이차함수 그래프와 직선의 위치관계 등 고등학교 1학년이 되서야 배우는 내용이 포함된 문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현수는 “이러니 학원을 다니지 않을 수 없다”며 “배우지 않은 내용이 학교 시험에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현수는 또 “친구들도 이 같은 시험 문제에 대해 그러려니 하고 있고,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에게 구심점을 쥐어줘야 할 공교육이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교육 열기가 뜨거운 지역을 중심으로 중학교 시험 대부분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난, 최고난도에 해당하는 문항들이 잇따라 출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은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과 함께한 ‘사교육 과열지구의 중학교 수학 시험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분석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6개 광역시의 사교육 과열지구 내 중학교 18곳의 2016년 1학기 2, 3학년 수학 시험지 35개에 대해 진행됐으며, 27명의 현직 교사가 참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험지 32개(91.4%)에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위반한 ‘극상’ 문항이 출제됐다. 또 27개(77.1%)에서는 선행교육을 유발하는 문항이 포함됐다.

전체 문항에서 난이도 ‘상’ 수준 이상(상·극상)의 비율은 41.5%로 높았고, ‘중’ 수준은 41.6%로 나타났다. ‘하’ 수준은 16.3%에 불과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시험 문제의 난이도 분포를 상 30%, 중 40%, 하 30% 정도로 조절할 것을 학교 측에 권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4년 9월 도입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약칭 공교육정상화법 또는 선행교육규제법) 제8조는 ‘학교는 국가 교육과정 및 시도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하며 편성된 학교 교육과정을 앞서는 교육과정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 시도 교육청은 매년 관할 내의 모든 초·중·고교의 선행출제 여부를 점검해 교육부에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번 분석에 참여한 서울의 A중학교 교사는 “기준에 의거해 시험을 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일부러 문제를 심하게 꼬아 놓았거나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계산 시간을 요구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구의 B중학교 2학년 기말시험에서는 성취기준에 없는, 모든 항의 계수가 정해지지 않은 일차부등식이 나왔다. 이 문항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풀 수 있는 문제로 계산과정이 복잡해 풀이법을 여러 번 반복해 훈련해야 풀 수 있다고 평가됐다.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인 ‘축에 대한 대칭이동’에 대한 문항도 울산의 C중학교 3학년 시험에서 출제됐다. 이는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에게 다분히 유리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서울 D중학교의 한 2학년 학생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학교 수업에 충실했지만 정해진 시험 시간 내에 문제를 모두 풀어내는 건 사실상 어렵다”면서 “여러 학원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미리 연습한 친구들과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상황이 이렇지만 작년에 전국 시·도교육청이 교육부에 보고한 선행출제 건수는 15건에 그쳤다”며 “사교육을 유발하는 학교 시험으로 인해 사교육비는 줄지 않고 수학교육의 질도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ivemic@kukinews.com

김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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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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