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테스트에 중국어 전문 과정까지… 영어유치원 무리수 ‘우려’

영재테스트에 중국어 전문 과정까지… 영어유치원 무리수 ‘우려’

기사승인 2017-01-05 08:27:01

[쿠키뉴스=김성일 기자] 올해 5세인 지인(가명)이는 지난해부터 서울 서초구의 한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만큼은 유아 시기부터 체계적으로 배워야한다는 엄마의 판단에 의해서다. 한 달에 드는 비용은 교재비, 간식비 등을 포함해 138만 원. 지인이 엄마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어차피 들어갈 교육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며 “아이가 일찍 영어학습을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덜 들어가는 셈이 된다는 주변의 조언도 있었다”고 말했다.  

비싼 이용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과열 지구를 중심으로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해당 유치원들은 자신들의 커리큘럼을 이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향후 아이의 학습 성취도가 크게 엇갈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지나친 선행학습은 오히려 아이들의 능력 발휘를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 영재 테스트에 중국어 전문 프로그램까지… “선택 이유 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A영어유치원은 일명 ‘영재 테스트’를 실시해 입소문을 탔다. 입원(入園) 기회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데,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 또한 기본적 수준을 갖췄는지 따진다.

유치원 관계자는 “부모님들이 원하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적의 교육 분위기 및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원비는 과정에 따라 차이를 보였지만 최대 200만원에 육박했다. 

강남의 B영어유치원의 경우 영어에 이어 중국어 전문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다. 중국인 강사가 매일 같이 아이들을 개별 상대한다. 등록금은 175만원으로 유치원에 들어가려면 3개월분을 한 번에 내야 하지만 방문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상담 과정에서 유치원 측은 “사립초등학교 등에서 중국어 비중을 크게 다루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어를 겉핥기식으로 일주일에 한두 시간 하는 것과 중국어 전문 인력을 통해 매일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영어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원장은 “평범한 곳은 이 일대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면서 “아무리 비싸도 선택을 받은 이유는 다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평균 비용 100만원… 학습시간 중학생과 맞먹어

지난해 6월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밝힌 ‘유아대상 영어학원 실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내 반일제 영어유치원의 월 평균 교습비는 약 89만 원에 달했다.

여기에 재료비나 급식비 등 기타 경비(20만2541원)를 더하면 실제 들어가는 한 달 금액은 100만원을 훌쩍 넘게 된다.

교육부가 공시한 사립유치원비의 학부모 부담금 15만 3667원의 6배 수준이다. 월 평균 교습비에 따른 연간 비용은 약 1069만 원. 이는 국내 4년제 대학의 연간 평균 등록금 667만 5000원의 2배에 이른다.

유아들이 학습환경에 노출돼 있는 시간도 상당히 길었다. 영어유치원의 영어 교습 시간은 하루 평균 4시간 57분으로 조사됐는데, 이를 초등학교 수업 시수로 환산할 경우 하루 평균 7.4교시에 해당한다.

유아들이 초등학교 1, 2학년(5교시) 학생보다 2.4교시 가량 더 많은 학습시간을 갖고 있는 셈이다. 중학교 하루 수업시간인 4시간 57분(교육과정상 중학교 일주일 수업시간 33시수×45분과 비교)과 맞먹는다.

◇ “위험한 학습환경에 노출”… 적기교육 필요

교육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 취학 전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이 하루 4시간으로 운영되며 대부분 놀이 및 활동 위주로 시간이 짜여져 있는 반면, 영어유치원의 체계는 유아의 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위험하고 무리한 학습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한국아동패널 2008~2014 자료 심층 분석 연구’에 실린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이 만 5세의 문제행동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는 “영·유아기 사교육은 아동보다 부모의 주도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고,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자극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관련해 심성경 원광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아이가 학습 스트레스로 인해 왜곡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며 “인성을 바탕으로 한 내재적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유아시절 학습 스트레스에 치인 아이들은 실패감을 맛보고 이후 학습능력도 저하될 수 있다.

서유헌 가천대학교 뇌과학연구원장은 “유아기에는 뇌발달상 지식교육보다 적기교육 즉,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인성·창의교육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 시기를 놓치면 감정조절 능력 등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ivemic@kukinews.com

김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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