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요시다 목사 “아베, 과거 군국주의와 같은 길 가고 있다”

[인터뷰] 요시다 목사 “아베, 과거 군국주의와 같은 길 가고 있다”

기사승인 2017-01-20 00:00:20

“日 국민 중 아베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 더 많아”

“정치에 관심 없던 日 학생들, ‘시르즈(Seals)’ 중심 반대운동 시작해”

“아베, 과거 군국주의와 같은 길 가고 있어”

“왜곡된 아베의 역사관, 한국 국민은 신뢰할 수 없을 것”

“위안부 할머니, 日 학생들 앞에서 ‘상처 보라’한 일화 잊을 수 없어”

“사죄와 화해의 선교,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구절 영향 받아”

[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요시다 코오조오 목사(75)는 ‘사죄와 화해의 선교사절’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목회를 한 지도 어느덧 36년이 지났다. 1977년 일제강점기 만행이 고스란히 담긴 수원 제암리교회 순교현장에서 충격을 받은 그는 13년간 이어온 일본 목회활동을 접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역사교과서 왜곡, 다케시마의 날 제정, 위안부 합의 등의 현안을 놓고 일본 정부와 언론사, 지방자치단체에 수십 통의 항의 서한을 보낸 요시다 목사는 침략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줄기차게 요구하며 한일 양국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관 수립을 주장해왔다.

요시다 목사의 큰 딸인 히라시마 노리코씨는 한국에서 성장한 것을 바탕으로 요시다 목사의 통역을 도우며 보탬이 되고 있다. 숙명여대 이만열 교수 밑에서 한국사를 전공한 그는 위안부를 주제로 졸업논문을 썼다. 지금은 목회자 남편과 함께 일본인교회 사역을 돕고 있다.

요시다 목사는 현 아베 신조 총리를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 규정짓고 “보통 우익보다도 더 강한 극우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구성한 내각조차 자신과 코드가 맞는 우익 인사로 임명했다. 믿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설명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잘못된 합의”라면서 “중심에 할머니들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본토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아베정권 반대운동이 빠르게 확산 중이라는 요시다 목사는 “일본 학생들은 정치에 대해 한국학생처럼 행동하지 않았는데, 많은 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최근 한일관계가 경색됐다.

=재작년 12월 말에 갑작스럽게 한일양국이 (위안부 문제로) 합의를 했는데, 크게 잘못됐다. 정부뿐 아니라 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합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끌려가 고통을 받았다. 그 분들이 중심에 있는 건 당연하다.

할머니들에게 설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갑자기 연말까지 합의하도록 했다. (합의금) 10억 엔이라고 하면 적은 돈이 아니지만, 오랫동안 피해를 입었던 할머니들의 입장에서는 돈이 아니라 그 분들의 인권, 여성으로서의 자부심, 그런 것이 구체적으로 인정이 돼야 한다.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수요집회가 지금도 열리고 있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다루고는 있지만, 일부 할머니는 (합의금을) 받았지만 대부분 분들은 아직까지도 받지 않았다. 어떤 뜻이냐면 피해자 할머니 분들이 갑작스럽게 맺었던 한일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베 신조가 역사 인식에 대해서 일제시절에 대한민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저질렀던 만행을 인정하지 않는 답변으로 전전하고 있다. 침략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고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다. 아직까지도 역사에 남아있는 문제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하고 있는 사람이다.

외무부 대신을 통해 합의를 얻었다고 하지만 한국 국민, 그리고 할머니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받아들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아베의 발언도 그렇고, 역사관도 그렇다. 돈은 10억 엔이 왔는데, 마치 그것을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는 조건과 같이 저쪽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상적으로 교류하고 대화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마음을 일본인으로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무엇을 가장 원하고 계시는지도 (알고 있다.) 그걸 생각할 때 위안부 문제 합의라고 하는 건, 내용을 볼 때에는 역시 좋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를 어떻게 보는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베 신조라고 하는 사람은 일본 사람들은 거의 알고 있는데 그냥 우익이 아니라 극우사람이다. 보통 우익보다도 더 강한 우익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아베 내각이 2/3 내지는 3/4의 사람을 자신과 코드가 맞는 우익 인사로 임명하고 있다. 일본 국방부 장관격인 사람(현 방위성 이나다 도모미 대신)은 진주만에 가서 애도를 표해놓고 일본으로 돌아오자마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수상 뿐 아니라 거기 구성원들이 전부 우익이다.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 게 일본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옛날 군국주의와 같은 길을 다시 가고 있지 않느냐고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대단히 걱정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이 아베다. 자민당(아베 소속당)이 중의원,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아베 정권에 모든 걸 맡겼다는 뜻이 아니다. 국민들의 의견도 귀를 기울여야 되는데 자기와 생각이 다른 국민의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이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거다. 작년부터 아베 정권이 제멋대로 집단적 방어를 하겠다고 하는데, 일반인뿐 아니라 학생들도 일어나서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다. 자위대가 외국에서 군사행동을 할 때에는 학생세대가 나아가야 되겠고, 반드시 희생자가 나올 거라는 이유에서다.

일본 헌법에 의하면 절대로 국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되어 있다. 야당 의원들은 당연히 반대하지만, 자민당(여당) 측 헌법학자 두 명도 국회에서 역시 헌법위반이라고 해석했다. 도의상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는데 자민당에서 다른 우익적인 헌법학자를 불러서 지금까지와 다른 해석을 하라고 미리 얘기를 했다. 야당과 여당 측에서 참고인으로 부른 헌법학자의 증언은 끝이 났는데도 자기들 마음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몇 번이나 번복했다. 그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다.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평화 헌법보다도 특정 집단의 판단이 위에 있느냐는 문제다.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 일본 평화 헌법보다도 위가 되기 시작했다.

일본 학생들은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해서 ‘시르즈(Seals)’라는 행동 그룹을 만들었다. 명치(메이지)학원대학교 4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여러 대학교로 운동이 확장돼 굉장히 유명한 학생 운동권이 됐다. 이런 일은 드물다. 지금까지 일본 학생들은 정치에 대해서 한국학생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집단적 자위권을 실행하려고 했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학생들이 그 그룹을 중심으로 운동이 확대됐다. 많은 게 바뀌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자민당 아베정권의 생각대로 집단적 자위권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됐는데

=한일정부가 서로 믿고 협력하는 것은 좋지만, 30년 정도 살면서 한국의 의식을 생각해보면 특별히 지금 정권을 잡은 아베 신조라고 하는 사람이 과거에 있던 일제 침략행위라든지 36년 동안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지금 정권을 잡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국민들의 입장에선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군사 동맹은 국가 기밀이 많이 있기 때문에 상대를 믿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가 없다. 일본에서도 아베 정권의 역사관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고 있고, 특별히 기독교인 증 양심세력이라고 하는 분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어떻게 앞으로 하려고 하는 지 믿을 수가 없다.

얼마 전 부산 동구 일본 영사관에서 소녀상이 강제로 철거돼 논란을 빚었다.

=한일합의라고 하는 것이 가해자보다 피해자 입장, 특히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상처가 우선시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소녀상의 존재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름방학이 되면 일본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한국에 와 있는데, 한번은 정대협에게 부탁해서 일주일동안 학생들을 역사현장에 안내하는 가운데 한 피해자 할머니께서 자신의 경험을 조용히 얘기해주시다가 그때가 생각나셨는지 갑자기 속옷을 벗고 “상처를 보라”며 보여주신 적이 있다. 상처가 4~5cm정도 됐다. 고이즈미 총리 때였는데, 할머니는 “고이즈미와 일왕을 지금 여기에 데리고 오라”고 큰 소리를 치셨다. 그 때에 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고, 같이 온 선생님도 그랬다. 그리고 식사자리에서 할머니는 아까와 전혀 다른 점잖은 모습으로 “아까 큰 소리로 화를 내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너희들에게 어떤 죄가 있느냐, 나쁜 것은 너희들 나라에 어른들이다. 있었던 것을 없었다고, 저질렀던 만행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죄다. 가서 증언을 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너희들 어르신들이 가장 나쁜 사람이다. 앞으로 그런 인간이 되지 말아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그 분들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 영사관 앞에 세워졌던 것은 제가 볼 때에도 당연한 일이다.

일본 정부에 항의서한을 계속 보낸 걸로 알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언론이나 현(지역 단위) 등에 많이 보냈다. 일일이 세고 있지 않지만 수십 차례 발송했다. 독도 문제가 일어날 때, 그리고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많이 보냈다. 

아베 신조가 가장 나쁜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도 야수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그는 ‘자기 나라를 위해 전쟁하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참배하는 게 왜 나쁘냐’고 했는데, 전쟁을 시작했던 전범들이 같이 있는 게 신사다. 그래서 항의서한을 보냈다.

이러한 활동에 목회 영향이 있었는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구절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인은 두 가지 회개해야 된다고 본다. 하나는 지금껏 일본이 우상숭배를 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이웃나라에 대해서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과해야 된다는 거다. 탐욕이나 증오심, 자기 나라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에서 침략이 발생했다. 피해자에 잘못을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께 큰 죄를 저질렀다. 때문에 죄를 회개하는 활동 하나하나가 나에겐 목회 활동이 된다.

여름방학 되면 일본학생들이 많이 온다. 나는 그들에게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역사 전달보다는 전도와 설교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에게 비판을 받거나 위협을 받진 않는지

=거의 없다고 해도 된다.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 목회자가 그런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본다. 특정 극우 세력을 무서워해서 그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에 가만히 있는 건 안 된다. 그런 위협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목회자 가운데에서도 극우가 있다. 나는 극우사상을 가지고 기도하고 설교하고 목회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이야기한다.

dne@kukinews.com

이다니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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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니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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