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박예슬 기자] 지난해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인 9.8%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악의 고용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취업 스트레스를 음주로 해소하는 이들이 늘면서 또 다른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최근 취업 스트레스를 겪으며 술을 마신 상태에서 폭력, 방화, 자살 등을 저지르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술김에 저지른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심리적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산 원장은 “사람은 누구나 사회 안에서 성장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이나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하거나 취업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자기 존중감이 낮아지고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고 의기소침해져 사람들조차 만나기를 꺼리게 되고, 고독감과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원장의 설명이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대처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술이라는데 있다. 김석산 원장은 “실업이 폭음의 위험요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국내외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며, “특히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뇌에서 이성이나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을 억제시켜 취중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목숨을 끊거나 세상에 대한 분풀이로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 1일 전북 고창에서는 40대 남성이 주차된 화물트럭에 불을 질러 인근 마트까지 화재를 입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에 붙잡힌 그는 “취직이 어려워 술김에 저질렀다”고 진술한 바 있다.
설 연휴기간이던 지난달 30일에는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의 자살 장면을 생중계한 30대 여성이 네티즌들의 제보로 경찰에 구조되기도 했다. 해당 여성은 무직 상태로 평소 알코올중독 증상과 우울증을 앓아 왔으며 사건 당일에도 술에 취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같은 달 14일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 인근에서 20대 여성 2명을 이유 없이 돌로 가격해 부상을 입힌 20대 남성 역시 취업준비생으로 만취한 상태에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석산 원장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불안으로 이어져 불면을 겪거나 자괴감이나 우울감 등 다양한 심리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이때 술을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기분일 뿐, 실상 술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알코올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알코올은 뇌 보상회로를 자극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나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킨다. 술을 한두 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과도하게 마시면 뇌가 알코올에 내성이 생겨 호르몬 분비량이 줄어들고 우울한 감정에 빠진다. 게다가 알코올이 공급되지 않으면 뇌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한다. 자연스레 더 많은 양의 술을 찾게 되고 결국은 알코올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술이 아닌 운동이나 취미활동 등 다른 스트레스 대처방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그래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가까운 상담기관이나 전문병원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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