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시상식에서 수상자가 트로피, 혹은 메달을 받은 후 돈으로 바꾸는 것은 옳은 일일까요, 아닐까요. 적어도 한국에서는 아직은 존중받지 못할 일인가 봅니다. 뮤지션 이랑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28일 서울 구로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는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가수 이랑은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했죠.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진행되던 시상식의 분위기가 바뀐 것은 이랑의 수상소감 덕분입니다. 이날 이랑은 “제가 SNS에도 썼지만 1월에는 전체 수입이 42만원이었고 2월에는 96만원이었다”며 “어렵게 아티스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상금을 주시면 감사하겠지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상금이 없어 이 트로피를 팔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랑은 “제가 살고 있는 집 월세가 50만원이니 이 트로피의 경매 시작가는 50만원으로 하겠다”며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재미있게도 현장의 관객 한 사람이 손을 들어 해당 트로피를 현찰로 구입했습니다. 이랑은 현찰을 받은 뒤 들어 보이며 “저는 오늘 돈과 명예를 다 가졌다”고 자랑해 웃음을 주었습니다. 주최측이 “재미있는 수상소감이었다”고 말하자 “저는 별로 재미가 없지만 여러분들은 재미를 얻으셨을 것”이라고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았죠.
이랑의 수상소감을 향해 던져진 반응들은 다양하고 극단적입니다. “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음악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을 재치 있게 비꼬았다”라는 반응이 있는 한편, “음악적 성취를 축하해줬더니 그것을 돈으로 팔아넘겼다”라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한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자기 음악의 값어치가 50만원밖에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라며 “그런 인간의 음악이 대단한 철학이 있다고 평가한 선정위원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극단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죠. 그렇지만 과연 트로피를 ‘팔아넘기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요?
2015년 5월 은퇴한 미국의 실험물리학자 리언 레더먼은 자신이 1988년도에 받은 노벨물리학상 메달을 샌더스 경매소를 통해 내놨습니다. 레더먼은 "그 노벨상 메달은 20년간 내 선반 위에서만 있었다"며 "메달 판매금으로 전 세계에 물리학의 중요성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죠. 해당 메달은 76만 5002달러(한화 약 8억 5000만원)에 판매됐습니다. 심사위원의 발언과 레더먼의 사례 두 가지는 음악만으로 먹고 살 수 없는 한국의 모습과,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한 아티스트의 사정을 외면한 채 음악적 철학과 가치만을 아티스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착각을 보여줍니다.
이랑은 자신의 SNS에 지난 1일 “많은 분들이 걱정하시는 명예는 제가 집까지 잘 가지고 돌아와 잠도 같이 잤습니다”라고 단언해 마지막까지 작은 웃음을 안겨줬습니다. 자신의 음악을 판 것이 아닌, 단순히 트로피를 팔았을 뿐이라는 단호한 태도. 잘못된 것은 이랑일까요, 아니면 그녀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일까요.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