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어느 날 사랑해 마지않던 아내가 죽었다. 아내를 잃은 보험회사 과장 강수(김남길)는 아내를 잃은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회사에도 알리지 않은 채 일상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시각장애인의 사고를 맡게 되고, 해당 사고의 합의를 위해 병원을 찾게 된다.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했다가 깨어난 미소(천우희)는 자신의 몸은 식물인간인 상태로 잠들어 있고, 영혼만 깨어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미소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본디 시각장애인이었던 미소는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미소를 보지 못하던 중, 병원을 찾은 강수를 마주친다. 강수는 미소를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어느 날’이 시작된다.
‘어느 날’(감독 이윤기)은 언뜻 두 사람의 멜로를 예상하게 만들지만 관객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걷는다. 그렇다고 해서 장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겪게 된 두 사람이 또 다른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던져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점차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강수는 미소로 인해 세상에는 자신이 보지 못한 이면의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미소는 강수로 인해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감독의 전작인 ‘멋진 하루’를 비롯 ‘여자, 정혜’·‘남과 여’ 등이 섬세한 감각으로 남녀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다뤘다면, ‘어느 날’은 상처를 받은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고, 나아가 도리어 세상을 위로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린다. 주연배우인 김남길은 강수가 아내를 떠나보낸 빈자리를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웃고, 울고, 오해를 푸는 과정들을 수더분하게 연기한다. 술에 취한 강수가 식물인간인 미소의 병실에 찾아가 넋두리를 늘어놓는 장면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일상적인 슬픔이 얼마나 지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천우희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허공을 헤매는 천우희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 순간 절로 눈물을 쏟게 될 것이다. 다음달 5일 개봉. 15세가.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