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두 갈래 길에서 한 길을 막으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은 막히지 않은 다른 길로 간다. 그러나 누군가는 왔던 길을 돌아서 갈 수도 있고, 막힌 길이 다시 뚫릴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다른 길로 갔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아예 그 길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길 자체가 사로(死路)가 되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 업무보고에서 대기업의 갑질 근절과 공정시장경쟁 질서를 위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로 지적됐던 일감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하청단가 후려치기 등을 단절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공약에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이러한 의지는 정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재벌 감시를 전담하는 기업집단국의 확대 개편, 징벌정 손해배상제, 징벌정 배상범위 확대 등이다. 공정위는 고의성이 있는 위반 행위에 대해 배상액을 가중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대규모 유통업법에 도입하고 납품단가 조정대상에 최저임금 인상 등 노무비 변동도 포함시킨다는 계획이다. 가맹본부와 대형마트의 보복조치 금지도 법으로 규정한다.
여기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도 한 목소리를 냈다. 지난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격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을지로위원회는 19대 국회에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당내 기구로 그간 대기업 가맹본부와 점주간의 갈등, 골목상권 문제 등과 관련된 입법을 주장했다.
문제는 문 정부의 기조에 따라 대기업 규제가 더욱 강화된다고 해서 이 ‘낙수’가 반드시 골목상권이나 자영업자에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현재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은 월 2회 의무적으로 휴무해야하며 영업시간의 제한을 받고 있다. 여기에 복합쇼핑몰이 동일법 규제 내에 들어가게 될 경우 몰 내 전체 편의시설이 휴업과 영업시간의 제한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대형마트와 쇼핑몰을 찾던 소비자들이 발걸음을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으로 향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대형마트 규제가 강화되자 대형마트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0.9 성장하는데 그쳤다. 올해도 1% 남짓한 수준으로 예상된다.
전통시장이 성장한 것도 아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당 일평균 매출액은 2012년 4755만원에서 2015년 4812만원으로 1.19% 소폭 증가했다. 같은 기간 편의점 시장은 10조에서 20조원으로 두 배 이상 팽창했다. 성장률도 2015년 24.6%, 지난해 18.6%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형마트를 찾던 소비자들이 편의점으로 향한 것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보호, 골목상권의 부활은 필요하다. 그러나 순수한 의도와 정의감이 결과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주먹구구식 규제는 상처만 곪게 만들 뿐이다. 대형마트와 쇼핑몰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주민이고, 시민이고, 국민이다.
규제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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