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전미옥 기자]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암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국가암등록통계(2014년 기준)에 따르면, 평균 기대수명인 81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2%로 나타났다. 국민 3명 중 1명은 암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다. 암을 유발하는 요인은 생활습관, 환경 등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유전자’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암유전자’란 암세포를 만들어내는 유전물질을 말한다. 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을 유발하는 암유전자를 찾아내 치료와 예방에 활용하는 맞춤형 암 치료가 세계적 추세다.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면 해당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를 선별할 수 있어 치료 대안이 적은 말기 암 환자들에게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다양한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표적항암제 등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으며, 암의 예방과 완치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전자 검사를 임상에 도입하고, 보험 급여화한 선도적인 국가 중 하나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NGS기반 유전자패널 검사(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를 선별적으로 급여화했다. NGS 검사는 환자의 종양 조직 및 혈액을 분석해 수십에서 수백개의 유전자를 확인, 암을 유발하거나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를 찾는 진단기술로 환자에게 맞는 항암제를 찾는데 주로 활용된다. 여타 분석기법에 비해 시간이나 비용이 크게 절약돼 활용도가 높다.
현재 NGS 검사는 암 환자와 유전성 질환자·의심환자를 대상으로 상급 종합병원 22개 기관에서 실시되고 있다. 고형암(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난소암, 흑색종, 위장관 기질종양, 뇌척수의 악성종양, 소아 신경모세포종, 원발불명암)에서는 HER2를 포함한 14가지, 혈액암(백혈병, 림프종 등)은 3~11가지가 필수 검사 대상 유전자로 지정돼있다. 그 외 유전질환별(유전성 난청·망막색소변성 등) 7가지 등 추가 검사의 여부는 각 병원에서 결정할 수 있다. 환자 본인부담금은 50만 원 내외며, 검사 결과는 약 4주 정도면 확인할 수 있다.
박경운 분당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특정 유전자의 특정 변이가 검출될 경우 특정 치료 약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개인별 맞춤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에 있어서는 판독기술 등 의료진의 역량도 중요하다. 박 교수는 “환자에게서 특정 유전자 변이가 검출될 경우, 그것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변이인지 혹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양성 변이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 때 판독 과정에서 여러 근거들 중 어떤 근거를 중요하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 분석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까지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다방면의 보완이 필요한 상태다. 이와 관련 최근 정부는 총 사업비 769억 규모의 국가전략프로젝트 정밀의료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국인의 유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표적 치료제의 임상 효과를 검증해 맞춤형 의료를 확대하고, ICT기술을 활용, 클라우드 기반 병원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사업화하는 것이 목표다. 정밀의료사업단장을 맡은 김열홍 고대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유전체 분석에 따른 임상진단을 전국적으로 표준화해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환자마다 나타나는 특정 변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어떤 약물을 투여하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분석해 일련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번 사업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연구자들과 제약회사의 지원과 임상 의료진과 환자들의 정보제공 등 전 국민적인 참여와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임상에서는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장세진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는 “좀 더 활용도를 높이려면 항암 표적 치료제에 대한 제한을 풀어야 한다. 특정 표적 치료제가 특정 암에만 적용하도록 허가돼 다른 암에 효과가 있어도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앞으로 보완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유전자 정보는 암 예방에도 활용된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난소암과 유방암을 일으키는 BRCA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견, 가슴과 난소의 예방적 절제술을 받은 바 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BRCA 변이 보인자들의 평생 유방암 발생률은 72%에 달한다. 따라서 유전성 암 위험군이라면 유전자 검사로 적절한 치료와 예방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건강한 사람의 유전자 검사는 지양하고 있다.
김성원 유방암학회 출판간행이사(대림성모병원장)은 “유방암이 없는 여성에게서 BRCA 변이가 발견될 확률은 0.1%이하로 비용대비 효율성이 낮아 권하지 않는다. 적절한 치료법이나 예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유전자 검사 결과는 사실상 아무 의미없는 결과”라며 “무엇보다 무분별한 유전자 검사는 매우 위험하다. 유전자의 문제는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불안, 죄책감 등을 동반하고 이로 인해 안타까운 결정을 하는 환자 사례를 종종 목격했다. 유전자 검사는 반드시 의료진의 상담을 받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