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영화 ‘덩케르크’(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가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접한 순수한 관객들에게 남기는 첫 인상은 ‘전쟁 영화’다. 주인공 토미 역의 핀 화이트헤드가 전쟁의 폐허에서 땅에 엎드려있는 포스터만 봐도 전쟁의 참상이 강조되고 있다.
이 첫 인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덩케르크’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건 맞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특정 미션을 수행하거나 참혹한 전쟁의 폐해를 고발하는 기존 전쟁 영화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이면서 전쟁 영화가 아니다. 이런 인지 부조화 같은 상황이 관객들이 ‘덩케르크’에 다가가기 어렵게, 혹은 실망하게 만든다.
첫 인상만의 문제는 아니다. ‘덩케르크’를 감상한 평론가와 일반 관객들은 영화에 대해 쉽게 설명하지 못한다. ‘전쟁 영화’라는 장르적인 표현을 넘어서는 명쾌한 한 마디가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꼭 아이맥스(IMAX)로 봐야 하는 영화’, ‘잘 만든 영화’, ‘믿고 보는 놀란 감독’이라는 먼저 감상한 사람 특유의 우월감이 담긴 추상적 표현만 남는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설명하기보다 영화의 영상이나 놀란 감독의 과거 작품과 비교하는 이들도 많다. 아무도 묻지 않은 놀란 감독의 역대 작품 순위를 매겨서 들려주기도 한다. 생각보다 지루했다는 반응도 존재한다. 전쟁 영화에 큰 흥미가 없고, 놀란 감독에 특별한 애정이 없는 관객들이 ‘덩케르크’를 보려는 마음을 먹기 어려운 이유들이다.
‘덩케르크’는 분명 놀란 감독의 시선에서 전쟁을 해석한 영화가 맞다. 그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쟁’과 ‘놀란’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 훌륭한 영화를 주변인들에게 소개할 다른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 가지 대안이 있다. 하나는 역사(歷史)다. 사극이 그렇듯 모든 전쟁은 역사 속 한 시점의 사건에 불과하다. 기존 전쟁 영화들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자체에 집중했다면, ‘덩케르크’는 실제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평시와 전쟁 대신, 과거와 현재라는 더 큰 구조 속에서 전쟁을 그려내는 것이다. 앞서 놀란 감독은 전작 ‘다크나이트’에서 가상의 고담시를, ‘인셉션’에서 꿈을,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와 블랙홀을 스크린으로 재현해냈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세계를 마치 직접 가본 것처럼 실감나게 그려내고 그곳에 관객을 데려다 놓는 그의 장기다. ‘덩케르크’에서도 공들여 창조해낸 1940년 덩케르크라는 시공간으로 관객들을 잡아 끈다.
역사에 대한 감독의 시선도 영화 속에 담겼다. ‘덩케르크’는 육지에서의 열흘, 바다에서의 하루, 공중에서의 한 시간으로 시점을 나눴다는 사실을 친절하게도 영화 초반부에 자막으로 설명한다. 다른 곳, 다른 시점에서 시작한 각자의 과거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의 현재로 모인다. 개인마다 입장이 다르고 선택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그들의 과거가 모여 현재를 구성하게 되고 작전의 성패를 가른다. ‘덩케르크’는 그렇게 모인 현재가 다시 미래를 구성하는 과거가 된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지적한다.
두 번째는 체험(體驗)이다. 놀란 감독은 “관객들이 직접 해안가에 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또 전투기 조정석에 관객들을 앉히고 싶었고, 소형 선박 갑판 위에 서 있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 홍보문구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하고 싶었다”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놀란 감독은 어떻게 하면 관객을 영화 속 세계로 이끌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덩케르크’는 CG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제 전투기와 1300여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한 건 물론, 아이맥스 카메라를 육지와 바다, 하늘에 빼놓지 않고 설치해 인물의 시점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량을 최대한 줄여서 언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전쟁터의 현장감을 극대화시켰다. 관객들이 느끼는 현장감이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배경을 넘어 영화의 주제 그 자체가 될 정도로 성심성의껏 밀어붙인다. 아이맥스 전용 상영관에서 봐야 ‘덩케르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얘기가 많은 이유도 현장감을 체험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생존(生存)이다. ‘덩케르크’에는 시체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등장한다. 죽은 시체의 외형도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다. 군인과 일반인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고 참혹한 것인지 일깨워주는 것이 과거 전쟁 영화가 갖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였다. 하지만 ‘덩케르크’는 전쟁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멀리서 관조하는 대신 전쟁터에 서 있는 인물들의 입장에 집중한다. 전쟁터에서 누군가는 허무하게 죽는다. 누군가는 왜 살아남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이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이끌려가듯 살아간다. ‘덩케르크’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것이 전쟁이라고 속삭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전쟁을 되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전쟁 당시의 시점에 집중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메시지다.
△ ‘덩케르크’ 영업을 결심한 결정적 장면
‘덩케르크’에는 주인공이 없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도 몇 명 없다. 영화 ‘스파이 브릿지’로 재조명받은 배우 마크 라이런스와 놀란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톰 하디, 킬리언 머피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는 신인으로 채워졌다. 놀란 감독은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전쟁에 참여했는지 현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신인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이 장면은 영화가 어떻게 현장을 체험하게 하는지 묻는 질문에 놀란 감독이 내놓은 답이다. 전쟁에 참여한 수많은 청년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전투기 소리에 아래로 떨궜던 고개를 하나 둘 들어올린다. 어두웠던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밝은 색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공포가 어려 있다. 이 공포감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덩케르크’는 소름 끼치게 날카로운 전투기 소리와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 역동적인 영상 편집으로 표현하며 관객에게 한 걸음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