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부담스런 과열 여론, 히딩크 온 들…

[옐로카드] 부담스런 과열 여론, 히딩크 온 들…

기사승인 2017-09-01 17:42:55

[옐로카드] [레드카드]는 최근 화제가 된 스포츠 이슈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되짚어보는 쿠키뉴스 스포츠팀의 브랜드 코너입니다.

[쿠키뉴스=이다니엘 기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부진할 때마다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거스 히딩크다. 그의 2002년 4강 신화는 굉장한 성과였다. 그에 대한 국민적 동경은 적어도 그가 다시 한국 감독으로 부임할 때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한국축구는 약하다. 여기에 갖은 양념들이 버무려지며 과열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뿔난 여론은 한바탕 깎아내릴 ‘마녀’를 갈구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9차전에서 0대0 무승부를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최종전인 우즈벡 원정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자력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경기를 이기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6만 명을 훌쩍 넘긴 관중에게 붉은색 유니폼과 클래퍼를 제공하며 ‘붉은 지옥’을 연출했다. 장내에는 홈팀을 위한 갖은 퍼포먼스가 이어졌고 승리에 대한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의지는 결연했다. 여기에 상대팀 선수 퇴장까지 곁들어졌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하지만 한국은 유효슈팅 0개의 초라한 성적표로 경기를 마쳤다. 결정적인 찬스는 오히려 이란의 빠른 역습에서 나왔다. 한국 쪽에서 황당한 실수가 여럿 나왔고 위험천만한 장면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 둘이 아니다. 실력 차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경기력이었다. 

이날 경기로 9회 연속 월드컵 도전은 최종전으로 미뤄졌다. 홈 연승 기록도 ‘11’에서 끝났다.

자원이 빈약했을까? 한국 대표팀에는 지난 시즌 한국인 유럽 리그 최다 득점 신기록을 세운 선수가 있다. 손흥민이다. 그러나 근래 태극마크를 달고 768분 동안 1골을 넣은 게 전부다.

K리그에서 팀 최저 실점을 이끌며 단단함의 상징이 된 수비수들도 있다. 전북 현대의 김진수, 최철순, 김민재다. 그러나 이들은 공 처리나 트래핑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리그에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잔디가 말썽을 부렸다. 경기 시작 후 잔디가 들려 선수들이 휘청거렸다. 패스가 ‘잔디 벽’에 막혀 속도가 줄고, 어떨 때는 선수가 잔디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홈팀 선수들이 홈 경기장 잔디상태에 불만을 제기했다. 논두렁처럼 변한 잔디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거다. 패스 중심의 전술을 짰던 신태용표 축구도 일순 무너졌다.

잔디 상태를 악재라고 한다면, 경기장에 운집한 6만 관중은 호재다. 하지만 이 역시도 악재라 했다. 하지 말아야 했던 변명이다. 축구대표팀 주장완장을 찬 김영권은 경기 후 “관중 함성이 너무 커서 선수들끼리 소통하기 힘들었다.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았고, 선수들끼리 소통을 하지 못해 답답했다”고 말했다.

김영권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 9차전 당일 아수라장이 된 응원분위기는 한국보다 이란에 더 큰 부담이 됐을 건 자명하다. 연습대로 되지 않았다면, 상대팀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논란이 되자 김영권은 “선수간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표현이 관중 탓인듯 전해진 것 같다”면서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근래 국가대표팀은 경기 후 어려움을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대표팀의 ‘진짜’ 어려움은 어쩌면 과열된 여론에 있을 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이다.

얼마 전 축구 경력만 20여년을 훌쩍 넘긴 선배 기자를 만났다. 그는 경기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과열된 여론이 얼마나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말해줬다.

“황금기가 있으면 쇠퇴기가 있다. 잘할 때가 있으면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여론이 과열되면 침체는 노출된 문제 이상으로 길어진다. 냉철하게 문제를 점검하고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더 큰 추락을 경험할 거다”

간혹 성적이 부진해도 기대가 되는 경우가 있다. 2002년 브라질이 그랬다. 턱걸이로 예선을 통과한 브라질은 본선 무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3R 트리오로 잘 알려진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지뉴의 활약이 빛나는 대회였다.

당시의 브라질이 지금의 아르헨티나에 오버랩 된다. 아르헨티나는 1일 열린 월드컵 남미예선 우루과이 원정전에서 0대0으로 비기며 5위를 유지했다. 본선티켓은 4위까지 주어진다.

본선행에 먹구름이 꼈다 할 법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 우루과이 홈에서 80대20에 가까운 공 점유율로 경기를 독식했다. 이들이 아무리 어렵게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더라도 우승후보 1순위에 꼽힐 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축구에선 그런 기대를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한국축구는 그냥 못한다. 바닥이 드러났다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한국무대를 쓸쓸이 떠난 슈틸리케 감독은 본래 러시아 월드컵을 목표로 데려온 감독이었다. 그러나 지속된 부진과 여론 악화로 결국 경질의 길을 걸었다.

2014년 9월 한국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2015년 A매치 16승3무1패, 17경기 무실점, 경기당 실점률 0.2(FIFA 가맹국 가운데 1위) 등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당시 그는 제2의 히딩크 내지는 그 이상으로도 불렸다. 

K리그 경기를 빠짐없이 보고 다니며 젊은 선수들을 대거 중용한 슈틸리케 감독의 비전은 명확했다. 아시안컵 준우승, 동아시안컵 우승,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 등의 성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던 그는 한국축구의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그는 입버릇처럼 “상대가 강팀이라도 우리의 철학을 포기하면 안 된다”면서 용기를 북돋아줬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15년 연말, 그는 돌연 이런 말을 한다. “지금의 환호는 단 한 순간 야유로 바뀔 수 있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그는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견했다.

당분간 순항할 것 같았던 슈틸리케호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건 지난해 월드컵 최종예선 중국전부터다. 3대0으로 앞서던 한국은 순식간에 2골을 내주며 아슬아슬한 ‘펠레스코어’ 승을 거뒀다.

잘 방어하던 수비가 일순 2골을 내준 걸 감독 탓으로만 돌리긴 힘들다. 후반에 나온 순간적인 수비 집중력 저하였고 공한증이라는 아픔에 사로잡혀 있던 중국 선수들의 투지어린 끈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슈틸리케는 얻어맞기 시작했다. 앞서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1대6으로 대패한 이력이 다시금 거론됐다. 미진한 성적표에 각종 의혹, 발언 논란이 매스컴을 탔다. 선수들과의 불화설이 불거졌고 결국 최종예선 2경기를 남겨두고 그는 짐을 쌌다.

어제 경기 후 슈틸리케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간간이 보인다. 

“문제는 슈틸리케가 아니었다. 그를 믿었어야 했다” “그는 명장이었습니다” 

포털사이트 베플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현 여론의 상태를 대변한다. 슈틸리케에 대한 비난 여론은 이란전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팽배했다.

“축구대표팀에게 가장 힘든 건 ‘부담 떨쳐내기’가 아닐까 싶어요”

축구협회 한 관계자의 나지막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체감되는 곤란함의 정도가 자못 육중하지만 대안은 없어 보인다.

과열된 여론은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나 감독에게 결코 좋지 않다. 2002년 ‘추억팔이’를 하기에는 한국 축구의 수준이 추락했다. 

한국 축구는 약하다. 이제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반성 없이 미래를 얘기할 수 없다. 실망스런 경기력에 대한 분노어린 질타보다, 냉철한 지적이 필요한 때다.

dne@kukinews.com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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