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같은 소리③] 영화인 3인 중 2인, 고용계약서-4대보험 없다

[열정페이 같은 소리③] 영화인 3인 중 2인, 고용계약서-4대보험 없다

영화인 3인 중 2인, 고용계약서-4대보험 없다

기사승인 2017-09-18 07:00:00

(②에 계속) 앞서 인터뷰한 김라온 씨와 피터 씨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방송작가, 시나리오 기고가, 조명 스태프, 촬영 스태프, 프로듀서에서 배우까지. 영화계에서 주류를 이루는 직업은 한 개의 작품이 시작할 때 사람을 모집하고, 작품이 끝나면 모두 흩어지는 영화계 특성상 단기계약직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을 오래 보는 정규직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피고용인들은 임금지급 주체인 제작자들의 임금윤리의식이 투철하기를 바란다. 물론 선한 고용인들도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욱 많다.

■ 고용계약서도, 4대보험도 없다…. “일했다는 증거도 없어”

전국영화산업 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에 따르면 2016년 3월부터 2017년 현재까지 한국에서 개봉된 작품은 84개다. 이 중 근로계약이든 도급계약이든, 올바른 형태의 고용계약서가 일부라도 쓰여진 작품은 37%. 고용된 이들을 4대보험에 가입시킨 수는 37%다. 영화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3인 중 2인은 고용계약서와 4대보험이 없는 채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노조가 설립된 시기는 2005년 12월. 노조가 생긴지 10여년이 생겼지만 제대로 된 근로계약을 하고 있는 업체는 극히 일부다.

근로계약과 4대보험은 노동자가 제대로 된 근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최소한의 충족 요건이다. 이 두 가지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않으니 임금의 정기 지급, 근로시간 정착, 기본적인 임금 보장과 휴가 사용까지 모두 미지수로 남는다. 소속 회사 없이 프리 프로듀서이자 조연배우로 일하고 있는 박대정(가명, 29세)씨는 고용계약서의 의무화를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꼽았다. 고용계약서 안에 근로시간부터 휴가 사용까지 모든 것이 들어있어야 하는데, 계약서가 없으니 모두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 42조에 의하면 고용인은 피고용인에게 직접 임금전액을 통화로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기일을 정해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업계 특성상 정기적인 급여 지급이 힘들다. 통상적으로 상업영화는 약 3개월에서 6개월 사이 모든 촬영이 끝나며, 근로시간도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문제가 되는 지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며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근로시간제도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자면 하루동안 ‘사과’라는 영화를 찍는다고 치자.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단계가 필요하다. 배우들이 도착해야 하고, 장비를 세팅해야 한다. 배우들은 분장을 해야 하며 주변 세트도 정돈해야 한다. 하루에 한 장면만 찍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귤’이라는 장면을 찍을 때 ‘귤’ 장면에 필요하지 않은 배우나 스태프들은 다른 장면을 위해 무한정 대기해야 한다. ‘귤’이라는 장면에 필요한 시간을 감독이 1시간이라고 예상한다 한들 모든 것이 1시간 안에 끝나지도 않는다. 그 시간동안 기다리는 것 또한 고스란히 근로시간에 들어간다. 기다리는 시간도 ‘사과’라는 영화를 찍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모든 장면을 찍고 나면 하루에 16시간 이상 노동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거의 모든 영화 현장은 최저임금제가 아닌 일당제다. 하루를 1회차로 치고 1회차당 조연배우들은 10만원, 스태프들은 5만원 하는 식이다. 하루 16시간 일하고 5만원. 최저시급으로 치면 2017년의 영화 스태프들은 2005년의 최저임금(3100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근로수당과 야근근로수당을 구분 짓기란 더욱 어렵다.

그렇게 고생했다고 해서 임금이 영화촬영 기간 중 정기적으로 지급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는 촬영이 끝난 후, 어떤 영화는 개봉 후에 임금이 지급된다. 그렇다면 촬영 기간 중 스태프들은 어떤 돈으로 먹고, 자고, 옷을 입고, 이동해야 하는가. 박씨는 “영화산업을 떠나는 이들 대부분이 생활의 불안정함을 견디지 못해서 떠나는 것”이라며 “심지어 고용계약서가 없으니 그대로 떼먹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고용계약서 없이는 떼인 임금을 받아낼 방법조차 없어 막막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 최고은법과 함께 만들어진 예술인복지재단…. 호흡기 겨우 붙인 수준

2011년 2월 故 최고은 방송작가는 생활고로 수일 째 굶다가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최 작가가 집주인에게 남긴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는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같은 해 11월 국회는 일명 최고은법이라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했다. 업무 특성상 불규칙하게 임금을 받는 문화계 종사자들을 사회보장 체계 안에 편입시켜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이때 최고은법과 함께 만들어졌다. 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 복지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2012년 11월 19일에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 하는 예술인들을 법률로 보호하는 것,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구축 등이 재단의 설립 목표라고 재단 측은 밝혔다.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중문화예술분야의 예술인들에 대해 예술인 고용보험과 예술인 복지금고 등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마련한다.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의 경우 외적인 요인으로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중단하지 핞게 하기 위해 1인당 300만원의 창작준비금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일정한 소득과 재산, 고용보험 등의 자격 요건이 필요하다. 그외에도 복지법망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내 공개 발표 된 예술활동이나 예술활동 수입, 혹은 계약서, 과거 예술활동 내역을 증명해야 한다. 단 고용계약서 없이는 참여가 어렵다. 애초에 계약서를 쓰지 않는 업계 관행이 개선되지 않으면 여전히 영화인들은 복지를 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인 신문고’제도를 이용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불공정한 행위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예술인 신문고에 상담, 신고를 할 수 있으며 사실조사, 시정명령, 소송지원을 통해 구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 영화 업계인들에게 예술인복지재단의 제도는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박 씨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업계에서 시정명령이나 소송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영화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총체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업계에 산소호흡기만 겨우 붙여놓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④에 계속)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사진=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제공. 2015 12on12off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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