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온 편지] 가장이 되겠다는 꿈, 함께 이루게 해 주세요

[병실에서 온 편지] 가장이 되겠다는 꿈, 함께 이루게 해 주세요

기사승인 2017-09-26 00:10:00
최근 출시된 신약들은 건강보험 급여화가 이뤄지지 않아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 의료현장에서는 치료비 부담에 메디컬푸어로 전락하는 암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국가 차원의 경제적 부담 완화 방안, 즉 신약의 건강보험급여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최근 일부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의 급여 적정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건강보험 재정은 약 3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쿠키뉴스 전자우편으로 제보 온 암환자들의 소망을 ‘병실에게 온 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편집자 주] 

 저는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는 42세 폐암 환자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찾은 평생의 동반자와 제2의 인생에 대한 부푼 약속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발이라는 뜻하지 않은 시련이 저희의 새로운 시작을 붙잡아 세웠습니다.

작년 6월 수술을 통해 암을 떼어냈지만 신장이 좋지 않아 수술 후 적절한 항암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폐에는 다시 암세포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저에게 맞는 표적항암제가 있다고 해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내성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내성이 생긴 후 폐에만 머물렀던 암이 중추신경계까지 전이되면서 팔을 쓰지 못하게 됐습니다. 사무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저에게 직장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고통과 불편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부양해야 하는 어머니와 미래를 약속한 배우자가 있습니다. 모두를 위해 직장을, 생계를, 그리고 저의 건강을 지켜야만 합니다. 

저와 같은 폐암 내성 환자에게 효과가 좋다는 신약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유전자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T790 변이가 나왔다는 소식에 너무나도 기뻤고 감사했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아프신 어머니도 계속해서 치료를 이어가실 수 있으실 테니까요.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저와 같이 중추신경계까지 퍼진 폐암 내성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는 ‘타그리소’의 약값은 월 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건강보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도움과 배려로 치료 석 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보험이 되지 않는다면 가족 부양을 위해 치료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도 폐암 환자십니다. 신장까지 좋지 않으셔서 연로하신 데에도 불구하고 항암치료에 투석까지 받으시며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처음 폐암을 진단받았을 때도, 그리고 약값 때문에 매일매일 다음달 치료를 고민해야 하는 지금도, 제 걱정은 하나입니다. “내가 아프면 어머니도, 아내도, 앞으로 우리 가족을 어떡하지”

이런 저의 사정을 안 직장동료들은 지난 달, 저 몰래 군내(郡內)에서 모금을 해서 7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모아 저에게 보내줬습니다. 첫 달 치료가 끝나갈 무렵, 그렇게 또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음 달 치료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저에게, 가까운 곳에서 같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선뜻 도움을 주시다니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함과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열심히 치료받고 병을 이겨내는 것만이 보답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십여 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며 한 달도 빠지지 않고 건강보험료를 냈는데 모두가 다 알아주는 저의 어려움을 나라가 모른 척 하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타그리소 치료 3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 중추신경계에 있던 암들이 거의 사라지고 폐쪽 종양도 줄어들었습니다. 이전에 먹었던 표적항암제 때 나타났던 발톱쪽 발진과 같은 작은 부작용조차도 없고, 숨쉴 때나 생활할 때 몸이 훨씬 가벼워졌음을 느낍니다. 

매일매일 제 몸은 건강해지고 있지만, 그 만큼 제 마음의 걱정과 근심은 깊어갑니다. 타그리소의 비급여 치료비가 발목을 잡는 지금, 과연 앞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자꾸만 생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저와 미래를 약속한 예비신부는 약값을 보태겠다며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이렇게 착한 사람을 짝으로 만나 어머니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된 저는 참으로 행운아입니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의 배려 속에 직장을 잃지 않고 계속 일을 하고 있고, 먹기만 하면 충분히 더 건강해질 수 있는 치료제도 있으니 희망도 큽니다. 

하지만 타그리소가 보험이 되지 않는다면 가장이 되겠다는 제 일생의 꿈을 잠시 접고 비급여 치료비를 감당해야 합니다. 타그리소의 급여가 늦어질수록, 제 인생의 목표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약 비급여로 인해 꿈을 놓칠 밖에 없는 저와 같은 암환자들의 목소리에 부디 귀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빨리 타그리소가 보험이 되어 저희 가족이 꿈을 향한 여정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되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강원도 인제군 이창호>

정리=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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