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추석 가족 놀이문화로 급부상한 e스포츠

[기획] 추석 가족 놀이문화로 급부상한 e스포츠

기사승인 2017-10-05 07:00:00

#15년차 회사원이자 결혼 8년차 가장인 A(42)씨는 과거 스타크래프트 배틀넷 레더점수가 2000점에 달했던 게임 마니아다. 테란 종족을 선호했던 A씨는 직접 게임을 하는 것 못지않게 대회를 보는 것도 좋아했다.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열렬한 팬으로, 선수가 참가하는 e스포츠 대회를 거의 빠짐없이 직관했다.

회사일과 육아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며 자연히 A씨가 집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줄었다. 대회 직관 역시 같이 다니던 친구의 부재로 녹록치 않았다. 그런데 지난 설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사촌동생 B(14세)군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겨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곧장 A씨는 B군의 손을 잡고 근처 PC방에 갔다. 오랜만에 마우스를 잡은 터라 예전과 같은 실력이 나오진 않았지만 10년 전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A씨는 이번 추석에도 B군과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기로 약속했다. 얼마 전에는 B군이 메신저 톡으로 추석 중 롤드컵과 오버워치 대회를 함께 시청하자는 연락이 왔다. A씨는 이번 대회에서 어떤 팀을 응원할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며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새 놀이문화 e스포츠

명절 하면 으레 윷놀이, 널뛰기, 재기차기, 사방치기와 같은 전통적인 놀이문화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근래에는 게임(e스포츠)이 가족 단위 놀이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특별히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이어주는 매개로서 e스포츠는 매력적으로 여겨진다.

e스포츠의 태동은 199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붐으로 촉발된 e스포츠는 청소년 사이에서 축구, 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배틀 그라운드 등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대세 스포츠 문화’가 됐다.

과거부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e스포츠 발전의 큰 걸림돌이었다. 이른바 ‘e스포츠 1세대’와 게임을 처음 접한 기성세대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2003년 한 아침 토크 프로그램에서 당대 최고의 프로게이머였던 임요환을 초빙해 던진 질문들이다.

청소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둘러싸인 임요환은 게임중독자 혹은 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진행자와 학부모들은 “사이버머니가 1억쯤 있느냐” “PK(Player Kill)를 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느냐” “높은 자리에 오르면 현실에서 누군가가 해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느냐” “조직폭력배 쪽과 연결이 돼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이냐” 등의 질문을 던진다. 그 자리에서 임요환은 차분히 대답을 이어간다.

이후 임요환은 자서전을 통해 “프로게이머란 직업을 알리고 게임중독에 대한 의견을 말하려고 출연했었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e스포츠 1세대, 기성세대로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과거 e스포츠에 열광하던 청소년 팬들이 어느덧 30~40대가 됐다. 이들은 자녀들이 e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에 공감할 눈을 지녔다.

IT기업에 재직 중인 A씨는 “게임과 공부 성적을 연관 짓던 과거의 발상이 잘못됐음을 내 스스로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그런 인식을 주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게임사에서 일 하고 있는 C씨는 “게임이 중독과 상관없다는 연구결과가 다방면에서 나왔다. 오히려 두뇌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논문도 있다”면서 “과몰입에 대한 경계는 항상 필요하다. 이를 전제로 게임은 훌륭한 놀이문화가 될 거라 본다”라고 평가했다.

앞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요환은 “게임을 즐기던 과거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모든 부분이 바뀐다”면서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게임을 중독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두운 부분의 일면일 뿐이다.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밝은 부분을, 좋은 부분을 헐뜯을 순 없다”고 내다봤다.

가족 단위의 e스포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고정적으로 열리는 생활형 e스포츠 행사도 부쩍 증가하는 추세다. e스포츠에 열광했던 십수 년 전 청소년들이 이제는 e스포츠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로 자리 잡은 셈이다.

가족 e스포츠 페스티벌은 대표적인 가족 단위 행사다. 한국e스포츠협회 주관으로 5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행사에는 부모-자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부스마다 즐비하다. 유명 프로게이머가 참가해 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코너도 있다. 이들의 사인회는 유명 스포츠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실감케 한다.

페스티벌 참가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15년 1만 여명이 함께했던 행사는 2016년 2만여 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 5월에는 2만 5000여 명이 참가했다. 

협회는 “매년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증가하며 가족 간 소통의 물꼬를 트는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게임과 e스포츠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여가 문화로 성장 중임을 알 수 있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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