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절감 정책을 추진 중인 정부가 선택약정 할인(요금할인)을 조정한 데 이어 단말기 완전자급제 등의 도입이 논의되면서 시장 전반에 격변이 예고되고 있다.
◇ 요금할인부터 완전자급제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5일부터 휴대전화 가입자들이 단말기 지원금 대신선택할 수 있는 요금할인을 기존 20%에서 25%로 상향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초기 논의된 통신비 인하 대책인 1만1000원의 ‘기본료’ 일괄 인하 안이 업계에 지나친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보류되면서 당장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를 볼 수 있는 보완책으로 추진된 것이다.
후속 대책으로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 3년만에 지원금 상한제가 다음달 1일 폐지를 앞두고 있으며, 단말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부담하는 지원금 등을 각각 공개하는 분리공시제 도입 등이 방통위에서 추진되고 있다.
또 국회에서는 최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이슈에 불을 지폈다.
요금할인 등이 이통업계로 하여금 기본적인 통신비 부담을 낮추도록 하는 것이라면 분리공시제와 완전자급제는 단말기 제조사들의 참여까지 이끌어내고자 하는 제도다.
단말기 유통을 전담하고 있는 이통업계에 장려금 등의 명목으로 지급되는 제조사의 부담분을 공개하는 것(분리공시제)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제조사가 단말기 판매 유통을 맡고(완전자급제) 이통사는 통신 서비스 경쟁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제 통신비에서 단말기 할부금 등 기기 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황에서 제조사까지 아우르는 시장 전반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라면서도 “시각에 따라 정책 방향성에 동의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시장에 가져올 영향을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통업계는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더라도 향후 유통망이 어떻게 구축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결과는 미지수라는 입장’은 비슷하다. 반면 일부 시민단체와 알뜰폰 업계 등은 유통구조 단순화로 인한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한다며 찬성하고 있다.
이처럼 시각이 엇갈리면서 완전자급제에 대한 신중론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원장은 “영세한 통신 판매점만 어려움을 겪게 돼 일자리는 줄어들고 소비자 불편과 비용만 늘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고 말했다. 하태규 고려대학교 교수도 “‘원스톱 쇼핑’이라는 소비자 편익을 없앨 뿐 아니라 이중유통에 의한 유통 비용을 늘려 소비자 부담만 가중하는 방식”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통신비 인하 화두에 물러가는 단통법…알뜰폰도 긴장
지난 정부에서 통신 시장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단통법이었다. 단말기 유통시장에서 이통사들의 불법, 과잉 경쟁으로 인한 소비자 편익 불평등이라는 현상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 골자다.
단통법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부분도 지원금 상한제다. 출시 후 일정 기간 동안의 단말기 공시지원금을 33만원 이하로 제한하고 이를 공개토록 해 ‘불법보조금’ 등이 기승을 부리는 시장을 잡으려는 시도였다. 요금할인을 20%로 정한 것도 이 지원금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설정한 것이다.
반면 이번 정부에서의 통신비 정책 화두는 ‘인하’인 만큼 이 같은 단통법의 취지는 빛이 바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소비자 혜택을 제한하는 지원금 상한제는 조기 폐지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결국 사라지게 됐고 ‘지원금에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할인 기준도 방향을 수정했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오히려 ‘지원금 하한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요금 인하의 압력이 전혀 없는 상한제보다 지원금 하한을 둠으로써 소비자 혜택을 늘리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논리다.
단통법보다 앞서 도입돼 5년차를 맞은 알뜰폰 업계도 이번 통신비 인하 정책에 민감한 입장이다.
이통사 망을 빌려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뜰폰은 당시 보다 저렴한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이통사들이 요금할인을 높인 데 이어 2만원대 이른바 보편요금제까지 내놓을 가능성이 점쳐지자 가격 경쟁력이 줄어드는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알뜰폰 업계가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찬성하는 것도 서비스만으로 경쟁하게 될 뿐 아니라 현재의 제조사-이통사 역할 결합 구조에 변화를 가져와 ‘생존’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내놓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애당초 저렴한 서비스를 위해 알뜰폰을 내놨을 텐데 모두 가격을 내리도록 하면 알뜰폰은 왜 필요했던 것인지 모르겠다"며 “현재 통신 시장은 정책 방향도 중요하지만 기존 형성된 시장 형태도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