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케이로스가 칭찬한 파주 스타디움, 상암과 뭐가 달랐을까

[기획] 케이로스가 칭찬한 파주 스타디움, 상암과 뭐가 달랐을까

기사승인 2017-10-02 06:00:00



“가장 좋아야 할 서울 축구장 잔디가 이 모양이니 말 다 한 거 아닙니까?”

지난달 25일 FC 서울 서포터즈 한 축구팬이 경기 후 내뱉은 불만에는 애증이 담겨 있었다. 그는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팀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더욱 화가 난다고 했다. 상당수 팬들이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잔디를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에 수차례 시정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매번 비슷했다고 한다.

▶홈경기가 꺼려지는 서울

선두권 도약을 원했던 서울은 9월 두 차례 홈경기에서 모두 비겼다.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도 난조였지만 움푹 페인 잔디상태가 큰 걸림돌이었다. 드리블과 짧은 패스가 번번이 잔디에 막혔다. 이러면 결국 롱볼 위주로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다.

7~8월 잔디 상태가 좋지 않다는 편견이 보기 좋게 무너졌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문제는 완연한 가을날씨에도 ‘진행형’이다. 경기를 할 때마다 논두렁이 연출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장인 터라 더욱 눈에 밟힌다.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포항의 K리그 클래식 32라운드에선 경기 시작도 전에 잔디가 들려 경기장 여기저기에 널브러졌다. 시작 휘슬이 울렸지만 선수들은 ‘잔디 지뢰’를 피해 다니느라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같은 달 9일 서울과 제주의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에서도 경기장은 어김없이 잔디가 들쑥날쑥 튀어나왔다.

급기야 홈팀 수비수가 잔디에 걸려 넘어져 상대팀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내주는 장면도 있었다.

후반 22분 드로잉 상황에서 서울 수비수 신광훈이 공을 터치하다가 잔디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미끄러졌다. 근처에 있던 포항 공격수 이광혁은 이를 놓치지 않고 양동현에게 공을 내주며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었다. 슈팅은 급히 골문 안쪽으로 달려 들어간 신광훈에게 간신히 막혔다.

잔디 논란이 뜨거운 감자가 된 건 지난 8월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A조 9차전에서다. 이날 성인 축구대표팀은 10명이 싸운 이란에 졸전 끝에 0대0 무승부를 거뒀다.

경기 초반부터 잔디가 들려 선수들이 휘청거렸다. 패스가 잔디 벽에 막혀 속도가 줄고, 어떨 때는 선수가 잔디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홈팀 선수들이 경기장 잔디상태에 불만을 제기했다. 경기 후 손흥민은 “솔직히 화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잘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홈인데도 이런 잔디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쉽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잔디의 이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깔린 켄터키 블루글라스는 한지형 잔디(양잔디)로 섭씨 15~25℃에서 가장 잘 자란다. 쉽게 색이 변하는 한국(조선)잔디가 축구장 잔디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잇따르자 2002년 전후로 대부분 축구경기장이 이 잔디로 교체했다.

질적으로는 좋아졌지만 한국 기후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업계는 7~8월경 국내 최고기온이 30℃ 이상으로 치솟기 때문에 양잔디를 관리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여름철 K리그가 휴식기에 들어가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될 정도니 어려움을 알 만하다.

그러나 완연한 가을날씨에 접어든 지금도 상암월드컵경기장은 여전히 ‘잔디 비수기’에 있다. 지난달 9일 제주 유나이티드와 홈경기를 치른 뒤 서울시설공단은 15일여 동안 경기장을 관리할 시간이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9일부터 포항전을 치른 24일까지 일 평균 기온은 19~23℃였다.

유독 상암 경기장이 잔디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정확히는 관리 방식을 따져봐야 할 테지만 잔디 온도 조절이나 배수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이어 “문화행사 등 대관 횟수가 잦으면 그 또한 잔디 컨디션을 망치는 원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상암 잔디를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설공단 서울월드컵경기장운영처에 따르면 상암구장은 공공 체육시설이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개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문화·예술·종교행사에 대관을 해줘야 한다는 거다. 다만 매해 평균 10회 대관하던 것을 올해에는 3회로 횟수를 대폭 줄였다고 했다. 이 마저도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시기에 한해서 대관을 허용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현 잔디관리 부실은 외부의 문제만이 아닌 셈이다.

▶“비로소 한국 왔다” 케이로스도 춤추게 한 파주 스타디움

“완벽하다. 마침내 한국에 온 기분이다. 이런 시설을 이용하게 해줘서 매우 고맙다”

파주 스타디움은 여우같던 케이로스 이란 감독조차 반색한 곳이다. 케이로스 감독은 지난 8월28일 파주스타디움에 도착해 그라운드를 둘러본 뒤 “완벽한 환경이다. 이런 시설을 이용하게 해 준 한국에 감사하다. 언론에 나온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이게 진짜 내 생각”이라고 밝혔다.

케이로스가 칭찬한 파주 스타디움은 상암월드컵경기장과 같은 양잔디를 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차이가 나오는 걸까?

지난달 23일 파주 스타디움에서 열린 파주시민축구단과 춘천시민축구단의 2017 K3리그 어드벤스 21라운드 경기장을 직접 찾았다. 이날 파주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로 최고기온 27.3℃, 최저기온 12.9℃를 기록했다.

잔디 상태는 완벽했다. 강등권 탈출로 경쟁중인 두 팀은 화끈한 공방전 끝에 3대3 무승부를 거뒀다. 다소 거친 장면이 연달아 나왔지만 잔디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파주 스타디움 잔디 관리자는 1명이다. 경기 후 담당자인 방충규 주무관을 만났다. 그는 올해 5월부터 파주 스타디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방 주무관은 “여름철에는 국내 어딜 가도 잔디 상태가 고를 수 없다. 잔디 관리가 아무리 완벽해도 원천적인 기후 문제를 극복하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지속·반복되는 상암 경기장 잔디 논란에 대해서는 “아마 특정 경기장이 계속해서 조명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막을 방법은 없지만 피해를 줄일 순 있다. 그는 “잔디도 생명이다. 모든 여건을 가장 좋게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특히 땅이 굉장히 중요하다. 땅이 썩으면 병이 많이 온다. 최소 15년 정도에 한 번은 갈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 스타디움 잔디 관리 비결을 묻자 “우리는 일단 배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배수가 잘 되어야 잔디가 병에 안 걸리고 잘 뿌리박는다.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전했다.

방 주무관은 “NFC의 경우 지표산파(overseeding) 방식으로 씨앗을 섞어 온도에 강한 잔디를 키우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혹은 유럽처럼 하이브리드 잔디(천연+인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방식이다”고 소개했다.

앞서 케이로스 감독의 칭찬에 대해서는 “단지 인천(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보다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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