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처럼 흐린 달빛어린이병원, 해법은?

그믐처럼 흐린 달빛어린이병원, 해법은?

여전히 위태로운 야간 소아건강… 제도적 한계에 발목

기사승인 2017-09-30 00:15:00
#. 야간ㆍ심야시간, 당신의 아들과 딸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당장 아이를 엎고 병원으로 뛰어가지 않을까. 그런데 주변에 갈 병원이 없다면 어떤 심정일까. 더구나 다음날이면 아이를 타인의 손에 맡기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늦은 시간 이용할 수 있는 달빛어린이병원에 참여하고 있는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물음이자 “사업에 동참하는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실제 현대사회는 맞벌이 부부가 시대적 요구이며, 하나도 많다는 자녀관이 접목된 사회적 풍토가 팽배하다. 더구나 그로 인해 자녀에 대한 보호본능과 민감도는 높아만 지고 있다. 작은 생채기나 기침에도 응급실을 달려가는 모습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문제는 응급실을 달려가 3~4시간씩 수액주사를 맞으며 검사결과를 받아보면 별다른 이상이 없거나 가벼운 질환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경증으로 응급실에 달려오는 환자가 많아지며 정말 긴급하게 치료가 필요한 교통사고 환자 등이 갈 곳을 잃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2014년 소아 경증환자의 불가피한 야간 응급실 이용 불편을 해소하고 응급실 과밀화를 낮추기 위해 ‘달빛어린이병원’ 사업을 제도화했다. 이후 지속적인 대상 확대와 건강보험 재정지원 등 제도를 다듬어왔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달빛어린이병원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전국적으로 19곳에 불과하다. 서울에만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가능한 병ㆍ의원이 2805곳에 달하지만, 달빛어린이병원으로 밤 11시 또는 12시까지 진료하는 곳은 단 4곳이다. 그나마 2곳은 요일제로 운영한다.


◇ 왜 의료기관들은 달빛어린이병원에 참여하지 않을까

복지부는 2016년 11곳에서 2017년 현재 19곳으로 늘었다며 고무적이라는 입장이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정인 의사회를 등지고 결단을 내린 의사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앞서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1인 혹은 2인으로 운영되는 소아과의원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늦은 시간까지 진료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르는데다 파트타임 의사를 고용하는 것은 진료의 질이나 책임감 차원에서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특히 대부분의 소아과의원이 참여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형병원에서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해 야간ㆍ심야ㆍ휴일 진료를 볼 경우 환자가 해당병원을 계속해서 찾는 쏠림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소청과의사회에서 주장하는 대형병원 쏠림현상과 진료 질 하락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건비 등 야간, 휴일시간대 의료기관 운영문제 또한 달빛어린이병원 수가를 충분히 책정해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꾸준히 참여기관수가 늘고 있으며 관심을 갖고 참여를 준비하는 의료기관도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면서 “간호인력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의료기관 원장들의 의지에도 참여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 간호인력 수급불안이 핵심? … 또 다른 문제도 산적

실제 복지부는 참여기관을 늘리기 위해 ▶1개 의료기관에 여러 의사가 촉탁의 자격으로 진료하는 ‘당직제’와 ▶인접 의료기관이 돌아가며 야간진료를 하는 ‘연합제’ ▶한 병원이 일부 요일만 운영하는 ‘요일제’ 등 운영방식을 다양화했다. 야간진료관리료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환자당 평균 진료비를 9610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복지부가 내놓은 방안이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복지부가 제시한 운영방식 중 요일제만이 일부 의료기관에서 선택할 뿐 당직제나 연합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은 없으며 야간관리료 또한 ‘비싼 병원’이란 낙인을 찍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달빛어린이병원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의료기관의 원장은 “주변 의료기관도 저녁 7시까지 연장진료를 하고 있는데 달빛어린이병원에 참여한 병원들은 6시부터 야간관리료를 청구해야해 환자본인부담이 늘어 환자 보호자들의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간호인력의 확보가 아니다. 야간 근무가 가능한 적절한 복리후생과 처우가 주어지면 인력은 수급이 가능하다”며 “휴일이나 늦은 시간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의사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과거 약국에서 심야시간 의약품 요구에 부응해 심야약국을 운영한 곳들이 있었지만 조제료나 의약품관리료 등 행위별 수가 가산만으로는 운영이 안 돼 봉사차원으로 운영하는 곳들만 남았다”면서 “수가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큰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야간관리료로 수익이 느는 병원들도 있어 추가적인 지원은 어렵지만 간호인력이 확보될 수 있다면 참여기관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구나 환자본인부담 증가에 대해서도 오후 6시 이후 진료에 야간가산은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되는데다 야간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한 방편인 만큼 의료기관이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 한 개선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달빛어린이병원의 참여기관은 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소청과의사회는 일선 의료기관에 달빛어린이병원 참여를 막았다는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5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아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부는 야간ㆍ휴일시간 때 어린이 건강을 위해 어떤 대안을 추가로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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