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와 조기 대선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국가 개조 프로젝트를 내놨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로 대변되는 5대 국정과제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국정과제 보고대회에 직접 참여해 힘을 실었다.
이 가운데 보건복지 분야는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논쟁이 오가는 분야다. 실제 5대 국정과제 100대 세부목표 중 ‘모두가 누리는 포용적 복지국가’에 포함된 보장성 강화 계획은 그 하나하나가 보건의료계를 흔드는 사안들로 구성됐다. 특히 보장성강화를 위해 소요되는 예산, 정책 및 제도 방향에 따른 변화와 혼란, 세부계획 없이 제시된 목표로 인한 기대와 불안이 혼재된 일명 ‘문재인 케어’는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며 갑론을박의 중심에 섰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계획의 주요 쟁점을 짚어보고, 문 대통령의 현장 발표와 보건복지부의 예산안,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을 비롯해 관계자와의 정책 간담회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문재인 케어의 성공가능성을 예측해본다.
◇ 30조 vs 60조? 알 수 없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소요재정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지난 정권부터 추진했던 3대 비급여 보장성 강화정책을 포함해 4가지 틀에서 총 17가지 선언과 이를 뒷받침할 4가지 안전장치가 포함됐다.
문제는 문재인 케어가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특히 문 대통령의 발표 후 2달여간 가장 뜨거웠던 쟁점은 단연 ‘돈’이다.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을 시작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보건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는 당장 재정추계의 허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2022년까지 향후 5년간 보장성 강화를 위해 투입해야할 추가재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가 총 30조6164억원을 투입해 2015년 기준 63.4%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한 내용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달 의료정책연구소가 정부발표를 바탕으로 재정 소요액을 별도로 추계한 결과에 따르면, 비급여의 급여화와 신포괄수가제 확대적용을 위해 투입되는 예산을 정부 추계로 대체하고 기타 항목을 최소로 계산해도 2조원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의료정책연구소는 “정부의 추계는 과소 추계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수가인상, 인구고령화로 인한 자연증가분, 의료이용량 증가 등으로 인한 재정소요 증가분의 상당부분이 반영되지 않아 막대한 재정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사회보험 통합재정추계’를 바탕으로 “고령화와 노인 진료비 증가, 보장성 강화정책까지 더해 향후 5년간 건강보험 지출이 보장성강화 추계발표보다 6조6000억원 많다”며 추계의 정확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은 “3800여개 비급여를 급여전환 할 경우 추계가 불가능할 정도의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며 “문재인 케어에 소요되는 5년간의 추가 건강보험 재정이 최대 60조원이 될 수도 있다는 일부의 가정도 성립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31조원에 조금 모자란 재정으로 보장률 70%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기재부의 사회보험 통합재정추계는 과거 추세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추계된 결과이며 정부의 보장성강화 계획의 현실화를 위한 국고지원 확대, 보험료율 조정, 재정 효율 강화 등 제도개선책을 반영하지 못한 계산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면 될까.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는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한 3대 비급여 부담 완화정책을 그대로 승계해 향후 5년간 7조8484억여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아울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행위 800여개와 치료재료 3000여개의 급여화를 위해 예비급여제도를, 고가항암제 등 약제의 건강보험 지원을 위해 선별급여제도를 도입하고, 약 11조498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쓸 예정이다.
이 외에도 취약계층의 의료비 부담완화를 위해 7조3673억원을, 소득수준에 비례한 본인부담상한 설정과 긴급 위기상황 지원 강화에 2조5177억원과 5615억원을, 새로운 비급여의 발생을 차단하기 위한 신포괄수가제 도입을 위해 1조2718억원을 각각 투여할 방침이다.
◇ 보장성 강화계획 재정추계 “오차 범위 너무 커”
일견 단순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들로 들어가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당장 보장성 강화의 큰 축인 비급여의 급여화 부터가 문제다.
예비ㆍ선별급여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비급여의 종류와 가격을 정확히 인지해야할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신포괄수가제 확대와 의약품 및 치료재료 관리 체계 개편, 진료비 심사시스템 고도화 및 평가 체계 개선 등 '개혁'에 가까운 변화가 요구된다.
실제 복지부는 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진행한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간병비를 포함해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한 의료비를 12조1000억원으로 추산했지만, 보건의료계 관계자들은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데다 비급여 진료비를 추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당장 복지부가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 의료행위 800여개와 치료재료 3000여개, 생애주기별 한방의료 서비스를 추려 예비급여항목으로 급여권에 흡수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3800여개라는 수치조차 정확하지 않고 한방의료서비스는 정부 추계에서조차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관계자 A씨는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된 행위조차 세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여러 행위를 하나의 코드로 입력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가장 최근의 사례로 한방추나요법 급여검토과정에서 행위가 여러 가지로 나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비용추계 과정에서 한방의료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돼 있지만 구체적인 행위나 계획, 재정은 검토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현 시점에서 아무도 비급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정부도 세부적인 비용추계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더구나 선별급여제도를 통해 의학적 필요성이 인정되며 경제성 혹은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의약품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추정 소요예산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 대해서만 반영됐을 뿐이며 기대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을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 B씨는 “추계 과정에서 약제에 대한 선별급여 지정검토가 이뤄졌지만 일부에 불과하며 신약 등에 대한 추계는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선별급여 또한 경제성평가가 이뤄져야하는 만큼 다수의 의약품이 급여권으로 편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 의료정책연구소는 예비ㆍ선별급여와 의료행위 및 치료재료의 금액을 포괄적으로 계산해 지급하는 신포괄수가제의 경우 본인부담비율을 현 시점에서 확정할 수 없는데다 소요 재정을 계산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부 추계를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 재정추계 누락항목에 건강보험료 인상까지… 실현가능성 의문
이 뿐만이 아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를 필두로 의료계의 정부정책에 대한 반감과 적정수가보상에 대한 요구가 맞물려 재정수요가 늘어날 경우 정부가 장담한 30조6000억원 또는 통상적 보험료율 인상 약속은 지켜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인외래정액제 추계과정에서 누락된 한방 및 치과, 약국 등에 대한 재정수요와 1차의료활성화 및 만성질환관리제 도입 등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을 위한 심층진료비와 같은 보상금 등 정부의 재정추계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이나 과소 추계된 항목을 포함하면 추가소요재정은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국민적 저항이다. 실제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심지어 3.2%로 예상한 정부의 인상계획을 상회할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케어가 다음 정부에 보장율 70%를 지킬지 아니면 보험료 폭탄을 감수할지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보장성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보장성강화 계획에 따른 재정추계자료를 바탕으로 2019년부터 당기수지가 2조2000억원 적자로 돌아선 후 만성 적자에 허덕이게 되고, 연평균 3.2% 인상을 가정한 보험요율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있을 경우 적자폭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예비급여 혹은 선별급여의 도입, 적정수가 및 보장성 확대에 따른 본인부담금의 증가 또한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당장 의료 서비스 질 평가 등에 따른 가산금,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을 위한 재정적 지원과 가산금제도 도입 등은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으로 작용해 필연적으로 건강보험료 인상을 불러올 항목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계 관계자 C씨는 “보장성 강화계획은 선언적 의미가 크다”고 평하며, “현실적으로 현 보장성 강화계획과 재정계획으로는 건강보험 보장률 65%만이라도 달성한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30조6000억원의 추계는 단순한 예상에 불과하다”며 “전 정권들의 보장률을 봤을 때 70% 달성을 위해서는 2배 이상의 재정투입과 개혁에 가까운 의료전달체계 개편,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지지, 의료계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