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온 편지] ‘메디컬푸어 없는 세상’ 오긴 올까요?

[병실에서 온 편지] ‘메디컬푸어 없는 세상’ 오긴 올까요?

기사승인 2017-10-11 00:01:00
제가 하루에 꼭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은 인터넷 검색창에 ‘다발골수종’을 검색하는 일입니다. 

새로 나온 신약은 없는지,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약은 어떤 약이 있는지 꼼꼼히 살핍니다. 관련기사들이 때때로 보도되지만 기사를 읽어도 기쁘지도 않습니다. 허가된 신약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 제 남편을 위한 약은 왜 하나도 없는 걸까요?

제 남편은 40대 중반의 다발골수종 환자입니다. 다발골수종이 주로 고령의 남성이 걸리는 병인데 비해 저희 남편은 젊은 나이에 진단 받았습니다. 

몇 년 전 신장에 문제가 있어 여러병원을 전전하다 큰 병원에서 가까스로 다발골수종을 진단받았습니다. 아마도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다발골수종을 의심하지는 않았던 터라 진단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다발골수종 진단을 받았을 때, 이미 남편의 신장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진단이 늦어진 만큼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남편이 젊으니 치료를 서둘러 받으면 다시 예전과 같이 건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우리가족의 일상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 이식수술도 받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발했습니다. 이후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다시 한번 시도하고 싶었지만 신장기능이 정상이 아닌 경우에는 수술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새로 나오는 신약의 임상시험에라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이 또한 신장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1차 치료로 받았던 약물을 받던 중 남편은 저혈압쇼크로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약물치료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상황이라 선생님은 급여가 적용되는 순서대로 약물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습니다. 

1차 치료에서 받았던 약물과 같은 계열의 약물을 치료해야 되는 상황이 됐고, 불안감은 곧 ‘역시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레블리미드 치료 2개월 만에 뇌전이로 말을 할 수 없게 됐고, 겨우겨우 이어나가던 사회생활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조혈모세포이식도 안되고 약물치료도 안되면 대체 무슨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절망스러운 마음에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다행히도 얼마 후 신장기능에 문제가 있는 환자도 쓸 수 있는 키프롤리스라는 신약이 있어 치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키프롤리스는 아직까지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약입니다. 남편이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경제적부담은 눈 덩이같이 불어가고 있지만, 지금은 오롯이 이번 약물치료가 효과가 있어서 남편이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얼마전 드디어 키프롤리스가 급여등재과정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논의를 통과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러나 기쁨은 단 3초도 가지 못했습니다. 기사 하단에 키프롤리스 3제 요법(KRd)과 달리 남편이 받고 있는 2제 요법(Kd)은 논의에서 제외됐다는 내용을 보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현재로써 키프롤리스 2제 요법은 신장이상을 동반한 환자나 레블리미드 치료에 불응한 환자들에게 있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키프롤리스를 레블리미드와 같이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결정은 환자와 보호자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발골수종은 진행이 빠르고 재발이 매우 잦은 병입니다. 때문에 재발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 많아야만 환자의 질병개선이나 생명연장이 가능합니다. 

최근 많은 다발골수종 신약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급여되는 순서대로 약물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몇 개 안되는 신약을 비급여 처리하는 정부 때문에 남편과 같은 환자들이 받을 수 있는 치료는 거의 전무합니다.

키프롤리스는 급여 적정성이있지만, 레블리미드와 같이 쓰지 않으면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다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신장에 이상이 있어 치료옵션이 극히 제한적인 저희 남편과 같은 환자들에게 사용이 가능한 치료제가 급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좀더 빨리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은 너무 모순이 아닐까요?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입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공약으로 걸었던 ‘메디컬푸어 없는 우리나라’라는 말에 온 희망을 걸었습니다. 내년 즈음에는 적어도 치료비 걱정은 줄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내년 즈음엔 집을 내놔야하는 상황입니다. ‘메디컬푸어’ 없는 세상, 오기는 올까요? 물론 정부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겠지만, 환자들의 생명권 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가 과연 ‘메디컬푸어’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을지 의구심은 커져만 갑니다. 

저희 아들도 오랫동안 혈액암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여전히 큰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야합니다. 아들과 남편을 보살피는 일에는 쉬운 일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지만 지금 저는 남편이 빨리 치료를 잘 받아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오직 그 걱정만 하기에도 제 머릿속은 너무 복잡합니다. 

누구도 원망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가족이 건강하기만을 바라는데도 큰 용기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글을 읽는 분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분들은 알고 계실까요? 

대통령님이 약속한 ‘메디칼푸어 없는 우리나라’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제 남편이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경기도 고양시 박은정(가명)>

정리=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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