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직원 멘탈, 신경 쓰는 회사 늘지만

흔들리는 직원 멘탈, 신경 쓰는 회사 늘지만

예방은 꿈도 못 꾸는 한국… 갈 길 먼 정신보건 선진국

기사승인 2017-10-12 09:52:59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하지만 국내 정신보건체계와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보건당국은 지난 10일 ‘정신건강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지난 5월 30일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과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및 인식개선을 위해 ‘정신건강복지법’을 전면 개정한 후 갖는 첫 법정기념일 행사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전문인력을 향후 5년간 1455명 확충해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종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국정과제에 정신건강증진 관련 내용을 처음으로 반영한 정부의 의지를 전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서로의 마음을 보살피는 소중한 날로 기억되길 빈다”면서 “정부도 오늘을 잊지 않고 정신건강서비스를 확충해 나갈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정신건강 관련 제도와 사업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는 기쁨보다 싸늘함이 담겨 있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빈틈이 너무 많다”며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힐난했다.

그는 “정신건강복지법 전면개정의 핵심은 입원 중심에서 통원 중심으로 치료체계를 전환하는 것이지만 현실이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면서 “부족한 인력과 시설, 예산은 고려하지 않고 이상만을 추구하는 꼴”이라고 평했다.

심지어 묻지마 범죄가 증가하고 공황장애와 우울증 등을 앓는 정신질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며 “검진 등을 통한 예방이나 조기치료는 시도조차하기 힘들다. 오죽하면 기업이 돈을 써가며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신경 쓰겠냐”는 반문으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 사회와 분리시키고 격리하려는 분위기, 입원 중심 치료체계가 한순간에 정신보건 선진국처럼 외래와 예방 중심의 능동적인 환경으로 바뀌기는 어렵다는 지적이자 막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바람이었다.


◇ 임직원 정신건강관리 ‘세계적 추세’, 하지만…

이처럼 열악한 국내 상황 속에서 정신건강의 중요성과 관리의 필요성을 느낀 민간 기업들이 직접 직원들을 챙기려는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한 외국계 기업 인사관리담당자는 “유럽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직원에 대한 정신건강관리 중요성이 강조되며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곳은 아직 일부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에 불과하다”고 시사했다.

다만 그는 “일부 회사는 직원들의 복지 차원에서 비용을 부담해 건강검진에 정신건강 항목을 추가하고, 상담사를 직접 고용하거나 전문 강사를 초빙해 스트레스 관리 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며 “외국보다는 늦었지만 최근 (이 같은 회사가) 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프로그램을 통해) 예방이나 치료를 모두 개인에게 일임한 국내 정신보건체계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흥미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낮춰 생산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직장 내 호응과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아 보인다.

당장 직원 1인당 10만원 이상 비용이 소요되는데다 일련의 프로그램이나 정신건강검진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의료기관과 인력도 충분치 않고, 직원 개인의 질환정보에 대해 회사가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실제 복수의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의료기관들이 정신건강 관련 검진을 건강검진 패키지에 넣을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 결과를 사업주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지만 정신건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어 기업에게 질환 관련 정보를 어디까지 제공해야할지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기업정신건강관리 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는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는 “(기업정신건강연구소에서는) 질환정보가 개인의 민감정보이기에 개개인의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면서 “직원들의 전체 통계와 같은 경향이나 관리방향 등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개개인의 정보를 요구하기도 한다”며 “만약 관련 정보가 제공될 경우 인사에 불이익이나 낙인효과를 유발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정신건강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나 수요조사는커녕 4년째 공개하던 정신건강사업안내 조차 올해에는 일반에 제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간 진행해온 계층별 정신건강 관련 사업의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고 직장인에 대한 지원이나 사업은 존재조차 불분명하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질환별, 연령별 정신건강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직장인을 따로 구분하거나 조사한 적은 없다. 별도로 지원을 하거나 관리하고 있지도 못하다”면서 “예방과 관리는 검진 영역인데 아직 국가검진항목에는 포함돼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정된 예산과 법 개정, 인력 및 인프라 부족 등에 대해 언급하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하면서도 정부의 추진방향이 분명하고 의지가 뚜렷한 만큼 점진적으로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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