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10년째 50만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40만6243명에 그쳤다. 출산율 또한 2012년 가임기 여성 1명 당 1.297명이 10년 중 최대치다. 지난해에는 1.17명에 불과했다. 저출산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높은 모성사망률과 고령산모 비율. 분만취약지 증가와 분만병원 감소다. 결혼 혹은 임신 시기가 늦어져 고위험 산모가 늘고 있는 가운데 아이를 낳다가 혹은 낳은 직후 산모가 사망하는 일이 많아지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6년 기준 국내 모아사망률은 출생아 10만명당 8.4명으로 2006년 15명, 2011년 17.2명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OECD 평균 6.8명보다 높다. 산모의 평균 출산연령은 2004년 29.84세에서 2014년 32.04세로 늘었고, 35세 이상 산모도 9.4%에서 21.6%로 증가했다.
반면, 분만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은 2004년 1311개소에서 2013년 706개소로 10년새 절반가량 줄었고, 2016년에는 607곳으로 99곳이 더 사라졌다. 의원급 의료기관 중 분만실적이 있는 곳은 작년 기준 313개소로 2013년 409개소보다 96개소 적어졌다.
여기에 지난 4월에는 인천지방법원이 출산과정 중 태아가 자궁 내에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의 업무상과실치사혐의를 인정해 금고 8개월의 선고를 내려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료과실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기도 했다.
이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당장 장래에 대해 가장 민감한 전공의들의 산부인과 지원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산부인과 의사들 특히 개원의들의 권익과 미래를 고민해야할 의사회는 둘로 쪼개진 채 기득권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름, 선거방식 둘러싼 논쟁만
그간 산부인과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를 꼽으라면 단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를 들 수 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산의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단체가 2개가 됐다. 직선투표방식을 요구하는 단체와 간접선거제를 고수하려는 단체다.
편의상 ‘직선제산의회’와 ‘간선제산의회’로 구분되는 두 단체는 서로를 향해 비난과 고소고발을 이어가며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22일, 서로 다른 장소에서 열린 직선제와 간선제 산의회 추계학술대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도 다툼은 계속됐다.
오후 1시경 진행된 직선제산의회 간담에서 김동석 회장(사진)은 “명실상부하게 산부인과 의사를 대표하는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산부인과의 의료 환경을 바꾸고 있다”며 그간의 업적과 입장을 설파했다.
그는 지난 4월29일 서울역 광장에서 태아 사망사건에 대한 인천지법의 판결을 규탄하기 위해 열린 ‘긴급궐기대회’를 비롯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대한 반대 결의, 임산부 1인실 급여화 반대투쟁, 산부인과 협동조합 설립을 공으로 내세웠다.
이어 “간선제산의회는 70%에 달하는 회원들이 직선제로의 정관개정을 요구함에도 지난 3년간 같은 후보를 7번이나 내세워 간선제로 회장을 선출했다”며 “직선제로의 정관개정에 대해서도 노력하겠다고만 할 뿐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모습으로 회원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칭 사용에 대해서도 “법원은 간선제산의회가 제기한 명칭사용 금지소송에서 직선제산의회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라는 명칭을 사용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간선제에서 다시 항소했지만 고등법원에서는 장기간 두 단체로 나뉘어 분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원에서 합의조정을 통해 정관 개정과 공정한 선거로 회장을 선출해 통합할 것을 권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선거방식을 직선제로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원칙대로 추계학술대회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개정안을 상정하고 의결하면 된다”면서 “(간선제산의회에서) 준비를 못한 것이 아니다. 앞서 7번이나 개정기회가 있었지만 총회에 안건을 고의로 안 올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간선제산의회는 “서울중앙지법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명칭도 다른 단체이기는 하나 이름은 그대로 써도 된다는 이상한 판단을 해 항소를 했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법에 앞서 상식이 있다. 다른 단체라며 같은 이름을 고수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직선제로의 정관개정문제에 대해서도 “9월2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고, 총회에 올릴 안건이 없어 총회를 열지 않은 것일 뿐”이라며 “선거방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직선제와 간선제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이충훈 회장이 선출된 만큼 임기 내 정관을 개정하고 직선제 채택 여부를 의결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고광덕 대의원회 의장(전 산의회장)은 “얼렁뚱땅 마구잡이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차에 따라 정관개정 소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안을 마련해 대의원 총회에서 수정여부를 의결해야한다. 절차와 법을 어길 수는 없다”며 “직선제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회원을 위한다면 황당한 소송으로 일관해선 안 될 것”이라고 받아쳤다.
◇ 산부인과 생존을 위한 ‘통합’, 멀기만 한 이야기
소송과 비방, 폄하가 난무하는 가운데 산부인과 의사들의 생존은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 직선제산의회에 소속된 박성대 강원지회장은 “강원도는 분만취약이지며 모든 조건이 불리한 곳이다. 회원들은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라며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회가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김동석 직선제산의회장은 “직선제 산의회는 잘 운영되고 있다. 활동도 많이 하고 지지도 받고 있다”면서 “간선제산의회는 20년간 이어온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만을 한다. 통합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회원의 뜻에 따라 공정한 방법으로 통합 회장을 선출하고 회원이 원하면 직선제산의회를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현 간선제산의회 집행부에 대해서도 “현 회장은 봉직의이며 임원도 경찰병원 직원 등 개원가의 입장을 정부 등에 전할 전문성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장단만 맞춰주고 온다”며 “회원의 입장과 전문가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의사회가 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이충훈 간선제산의회장
(사진)은 “직선제는 산의회가 정관대로 대의원 선출을 하지 않아 대의원총회가 무효라고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정관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한다”며 “정상적인 사고방식인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
이어 “선거방법은 핵심이 아니다. 직선제든 간선제든 권익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는다. 회원들을 위해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을 개선하고 폐업이 늘고 모성사망률이 높은데다 제대로 된 진료도 못하는 현실을 개선해야한다”면서 “(정관개정이) 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보장성 강화정책과 산모 1인실 급여화 문제부터 풀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광덕 대의원회 의장은 “당초 분쟁은 2014년 회장선거 당시 직선제 산의회 구성원들이 지지한 회장과 의장이 선출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며 “(직선제 측이) 집권세력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행위를 하고 있다. 통합을 이야기 하지만 절차적 문제 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직선제산의회는) 회장이 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직선제를 할 경우 회장 후보에 대한 정보나 검증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면 중우정치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회원들 직선제 원하는 것 알고 있다. 개정안 올릴 수는 있지만 직선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체계를 함께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두 산의회 모두 일선 의료현장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통합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노력하는듯한 말들을 남겼다. 그러나 내심이 어떤지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일련의 설명과 해명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집행부 내부의 생각이 서로 엇갈리는 경우들도 발생했다. 한 간선제산의회 임원은 현 회장의 임기를 보장하며 차기 혹은 차차기 회장의 직선제를 언급한 반면, 또 다른 임원은 임기와 관계없이 회원의 뜻을 묻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직선제산의회 또한 통합을 위해 회원들의 뜻을 모아 해산 후 복귀를 언급하지만 자체적인 대의원총회나 선거 등의 절차적인 문제나 간선제산의회의 직선제 회장 선거를 위한 정관개정 소위원회 위원참여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등 의지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두 산의회의 모습을 지켜본 산부인과 개원의는 “침몰하는 배에서 서로의 재물을 탐하는 꼴”이라며 살아남기도 급급한 상황 속에서 개원의들의 목소리나 의견은 제대로 듣거나 신경 쓰지도 않는 모습에 실망과 답답함을 느끼는 듯했다. 또한 “신경쓰지 않는다”며 기대감조차 버린 채 스스로의 생존에만 몰두하겠다는 단절의지까지도 보였다.
차문석 부산시지회장은 “산부인과 소속 의사로 참담하다. (간선제산의회에서) 회원 70% 요구한 직선제 방안은 유야무야 넘어가는 느낌이다. 간단한 문제를 3년간 끌고 있다”이라며 “통합으로 가기 위해 부산시 회원들 의사를 물어 한 쪽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