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의 영화 ‘희생부활자’는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온다’는 비현실적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에 엄마와 아들이라는 등장인물관계를 통해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담은 모성애를 강조하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피해자들이 직접 진범을 심판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한다.
조폭영화와 사극이 판치는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낯선 ‘희생부활자’(RV, Resurrected Victims)라는 신비로운 현상을 담아내려 했던 시도에 박수를 안칠 수 없다. 어쩌면 의미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SF스릴러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같이 흥행에 실패했던 전례가 있어 투자배급사들도 선뜻 손을 내밀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희생부활자’는 개봉했고 관객들의 심판을 받고 있다. 시도는 분명 획기적이다. 억울한 죽음 뒤 복수를 위해 살아 돌아온 명숙(김해숙)과 그의 아들 진홍(김래원)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아들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모성애를 보여주고 성공의 키를 쥐기 위해 노력하는 착한 아들을 그려낸다.
물론, 관객들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사회적 메시지가 왜 모성애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모성애에 관련된 영화는 기존에도 수두룩하게 봐왔고 물렸기 때문이다.
곽경택 감독은 SF스릴러 장르 속에 관객들에게 사회적 부조리, 모성애, 부모의 한없는 사랑을 인지하지 못하는 자식들에 대한 비판을 덧입혀 담아내려했다. 단순히 좀비, 초현실적 존재, 유령을 통해 쾌감을 느끼게 하는 현란한 액션과 다양한 상상력만을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곽 감독은 미제살인 사건 속에서 우리에게 잊혀졌던 피해자들, 어두운 이야기와 더불어 익숙하지 않은 상황들을 ‘희생부활자’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을 풀어주고 타당성을 주려 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살아 돌아온 엄마에 대해 ‘희생부활자 89호’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검찰, 국정원, 경찰이 그 설명을 듣고 누가 정보를 선점할 것인가를 두고 기싸움을 벌인다. 검찰과 국정원이 각자의 이권을 위해 움직이고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두고 싸우는 상황은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FBI, 경찰, CIA가 이권다툼을 벌이는 모습과 흡사하다. 죽었다 살아 돌아온 명숙이 마치 좀비같이 멍한 표정과 고정된 눈동자로 목표물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한국영화 곡성이나 엑소시스트 영화에서 진부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살아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희생부활자의 모습과 모두 한을 품은 피해자라는 설정은 구체적이다. 또한 아무 생각과 목표 없이 돌아다니는 좀비보다 RV는 복수심에 대한 사명감으로 대상을 쫓아다닌다. 좀비는 그냥 맞고 쓰러지지만 RV는 복수를
마치고나면 체내발화를 통해 스스로 사라지는 설정도 고급스럽다. 더불어 일반 좀비는 극혐오의 비주얼이지만, RV는 생전의 모습과 그대로인 점도 흥미롭다. 모성적 욕망, 복수, 반성의 모토 하에 RV를 어떻게 그려내야 하고, 원작의 스토리를 어떻게 각색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아들 밖에 모르는 어머니, 무일푼 서민 아들이 사법고시 패스를 통해 일약 신분 상승한 검사가 되는 과정, 명숙의 사망에 관한 비밀이 반전 없이 흘러가는 서사는 다소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나(장영남)이 가족을 배신하고 열쇠를 쥐고 있을 거라 기대했다. 미드포인트를 지나 집안에 있던 장영남을 계속 보여주면서 후반 피치에서 기대 밖의 무언가가 튀어나올 거라 여겼다.
그러나 플롯이 느슨하게 풀리고 모든 초점이 클라이막스에서 아들 진홍과 엄마 명숙에게 맞혀지면서 무언가 한방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다소 실망했을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깊은 모정이라는 전형적 공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현재의 부모들은 자식한테만 의존하는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옛날의 어머니같이 쏟아 붇지도 않고 그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이 공감을못하는 것이다.
곽경택 감독의 의도는 공감한다.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잘 인지하지 못한다. 영화 속 진홍이도 그런 엄마를 단지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
‘희생부활자’가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이 영화는 신파를 따라갔지만, SF스릴러라는 도전하기 힘든 장르에 새로운 추리, RV라는 새로운 매개체, 다양하고 탄탄한 구조들을 투입했으며 후에도 한국영화 역사에 곱씹어 질 것이다. 지구를 지켜라와 같이 말이다.
이호규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