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농증에 흉부 X-선 촬영이 왠 말인가

축농증에 흉부 X-선 촬영이 왠 말인가

원리원칙의 ‘영상진단 진료지침’ 연내 공개… ‘임상현실’과 충돌 예고

기사승인 2017-10-27 00:01:00
“너무 순수한 진료지침이 나왔다. 파격적이다. 너무 순수해서 활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원가에서 협박과 항의방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24일 대한영상의학회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하 보의연)이 질병관리본부의 지원을 받아 마련 중인 ‘환자촬영종류별 영상진단 정당성 가이드라인’ 가안을 살펴본 양현종 순천향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평가다. 그리고 진료지침 가안이 최종안으로 확정될 경우 임상현장과 마찰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양 교수는 단적인 예로 소아 급성부비동염(축농증) 진단과정에서 이뤄지는 방사선촬영을 들었다. 그는 “교과서에서조차 부비동염에서 X-선을 찍지 말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아무 소용이 없지만 찍는다”고 털어놨다.

관행으로 이뤄지는 또 다른 예도 언급됐다. 고대구로병원 영상의학과 소속이라고 밝힌 한 교수는 CT 촬영을 위해 사용하는 조영제를 환자가 마시기 전에 이뤄지는 피부반응검사와 금식처방을 제시했다.

그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두 가지 다 근거가 없다”면서 “최근 연구들을 살펴봐도 금식에 대한 근거는 아예 없고, 피부반응검사도 하지 말라고 돼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상의학회 내에서도 논의를 거쳐 조영제에 대한 진료지침을 개정했다”고 전했다.


◇ 이론 vs 현실, 누굴 위한 진료지침인가

그렇다면 소용없다는 부비동염에서의 흉부 X-선 촬영이나 조영제 복용 전 금식과 피부반응검사는 왜 이뤄지는 걸까. 전문가들은 현실과 이상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양 교수는 “(진료지침의) 내용이 너무 순수하다. ‘정당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일 것”이라며 “이렇게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해야 할 것들, 지켜야할 것들 다 들어있다. 다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침을 이행하는데 상당히 많은 벽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예로 든 흉부 X-선을 다시 거론하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X-선 촬영 없이 CT를 찍으면 삭감하기 때문에 이뤄지는 관행이라고 강조했다. 건강보험 급여정책과 기준에 따라 이론적으로 배워온 진료지침이 흔들리고 좌우된다는 한탄이다.

조영제와 피부반응검사를 언급한 고대구로병원 교수도 “전문가는 무책임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는 전문가 입장에서 순수하게 근거에 기반해 기준을 제시하고 강한 근거에 바탕을 두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면서도 근거와 정책과는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했다.

다만 정치적, 재정적 원인으로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그걸 이유로 순수하지 못한 자세로 권고해서는 안 되며, 지침을 정하고 사회마다 가용한 자원들을 바탕으로 관행을 고쳐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양 교수 또한 공감의 뜻을 표했다. 그는 “벽은 그대로인대 지침이 올곧기만 하면 낙인을 찍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을 때의 무력감과 환자의 불안감, 의료적정성의 시스템 문제가 혼재돼 고민하지만 찍는 것”이라고 현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 “그래도 ‘정당한’ 진료지침은 필요해”

이처럼 영상의학계에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영상진단 정당성 가이드라인’ 최종안은 연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방향성 또한 이날 공개된 가안에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 총괄책임자인 정승은 영상의학회 품질관리이사는 “영상검사는 의료방사선 피폭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료피폭 안전관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검사만 실시해야한다”며 “불필요한 영상검사를 막고 필요한 영상검사를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가이드라인의 내용은 임상결정지원 시스템의 기본 데이터로 이용해 향후 지속적인 가이드라인 개발의 바탕으로 만들고,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이나 환자들도 올바른 영상검사의 기준을 알 수 있도록 앱(App)으로도 개발해 배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대표는 “많은 국민들이 영상검사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인식하고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고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아 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여기에 “의료소비자들에게는 검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가 당장 고민”이라며 “가이드라인을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알 수 있어 좋고, 보험재정을 줄이면서도 의사와 환자의 신뢰를 높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용어나 질환명, 표현은 일반인들이 알아보기 어렵다. 임상현장에서의 논란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좀 더 알기 쉬운 표현이나 용어를 사용하고, 필요성이나 요구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 후 대상을 확대하면 모두에게 긍정적일 것 같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진료지침 가안을 접한 심평원과 질본 관계자들은 지속적인 연구와 진료지침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지원과 적극적인 협조를 다짐했다. 특히 심평원 관계자는 개정작업에 함께 참여해 지침과 제도적 충돌에 대해 같이 고민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해 변화의 단초를 던지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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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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