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 반발에 발목 잡힌 혁신학교… “퇴색없는 단계적 접근 필요”

구성원 반발에 발목 잡힌 혁신학교… “퇴색없는 단계적 접근 필요”

기사승인 2017-11-03 05:00:00

학생·학부모 반발에 잇따른 계획 철회

일반화 작업으로 무늬만 혁신학교도

“충격 완화하며 입시 개선 병행해야”

대광여고는 지난달 27일 혁신학교 신청을 철회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광주시교육청에 제출했다. 지정 심의를 모두 마치고 최종 결과 발표만을 남겨둔 시점이었지만, 구성원들의 반대를 거스를 수 없었다. 혁신학교 신청을 두고 일부 학부모들과 동문, 교직원은 학생들의 성적 하락 등을 우려하며 항의 집회를 여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앞선 9월말 제천고도 2년간 추진해왔던 혁신학교 지정계획을 접어야했다. 학부모와 동문은 “학교의 정체성을 흐린다”며 시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였고, 학생들도 대의원회 찬반 투표결과를 근거로 반기를 들었다.

주입식 학습을 탈피해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해보자는 혁신학교 전환 계획이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혼란을 겪고 싶지 않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혁신학교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체제를 바꿀 경우 현실적 목표인 대학 진학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듯 현재 전체 혁신학교 가운데 고등학교의 비율은 1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혁신학교 고교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전국 고교 평균의 3배에 달한다는 지적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제기되면서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혁신학교의 학업성취도가 3배나 낮다는 수치는 과잉 일반화된 것”이라며 “단순히 성적만으로 혁신학교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009년 경기도교육감 시절 도입한 학교 모델로, 문재인 정부는 이를 교육 분야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보장하고 토론 수업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교사의 교육과정 자율권도 강화할 예정이다.

그러나 입시 위주 교육 현장에서 혁신학교의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 뒤따랐다. 김성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정책위원은 “학생이 자유롭고 행복한 공간을 만들자는 몇몇 학교의 의미 있는 시도가 구성원의 만족도를 높이자 이를 제도적으로 일반화하려는 작업이 전개됐다”며 “애초 혁신학교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고안됐는데, 외형적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질 관리는 안 되고 무늬만 혁신학교인 곳도 생겼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혁신학교 철회 사례 등에서 나타난 부정적 인식을 납득했다. 입시 경쟁 구도에서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명분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학력’을 말하는 관점 등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 얻은 학습 결과를 계속해서 학력으로 칭할 것인지, 그것이 궁극적인 학력이 맞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혁신학교의 확대는 구성원의 합의를 전제로 단계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혁신고등학교는 단계적으로 추진해 충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고, 그 과정에서 정당성을 충분히 확산시켜야 한다”며 “특목고나 자율고 등과 같이 하나의 유형으로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국형 혁신고등학교를 만들려면 중·고교 시스템 및 대입전형 개선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 정책위원은 “혁신학교를 사업처럼 공모한 뒤 계획서 제출하면 지원금 주고 나중에 어떤 효과 있었는지 보고서를 받는 식으로 추진하면 안 될 일이다”라면서 “적어도 결과는 보고서가 아닌 직접 학생과 학부모가 그 효과를 얘기하는 등의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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