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엔씨소프트의 설욕, 아직 만족할 때는 아니다

[기자수첩] 엔씨소프트의 설욕, 아직 만족할 때는 아니다

기사승인 2017-11-20 18:09:06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게임 중심 체제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적어도 실적 수치상으로는 괄목할 성과를 보였다.

지난해 이맘때 엔씨는 ‘주도권을 놓쳤다’는 우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이는 PC에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 플랫폼으로 게임 환경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넷마블게임즈에 매출 기준 업계 2위 자리를 내주면서 시작됐다.

그랬던 엔씨가 올해 3분기에만 매출 7273억원, 영업이익 3278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234%, 403%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직전 분기 대비로는 무려 181%, 773%씩 증가했다. 넷마블의 3분기 매출 5817억원, 영업이익 1118억원을 훌쩍 뛰어 넘은 수치다.

내용을 보면 더 큰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모바일 게임 매출이 전분기 대비 488% 늘어 전체 매출의 75.76%를 차지하는 5510억원에 달한다. 더 이상 모바일 분야에 약하다는 평가는 내리기 어렵게 됐다.

1998년 ‘리니지’라는 당대의 흥행작을 선보인 엔씨는 이후 동일한 MMORPG(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이라는 장르로 PC온라인 게임 시장을 주도했다. 이후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강적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 같은 분위기는 지속됐다.

강점인 분야가 너무 뚜렷해서였을까, 엔씨는 이후 급변하는 게임 플랫폼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고 모바일에 집중한 넷마블에게 추월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에 뒤늦게 ‘리니지 레드나이츠’라는 모바일 게임을 내놓고 추격에 나섰지만 큰 호응은 얻지 못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기존에 순항하고 있던 PC온라인 게임 ‘아이온’과 ‘블레이드 & 소울’ 등에 월과금과 유료 아이템 판매 강화라는 이중적 과금 체계를 강행, 적잖은 원성을 사는 시행착오까지 보여줬다.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지난 6월 엔씨는 리니지를 모바일로 이식한 ‘리니지M’을 선보였고 반년 동안 앱마켓 매출 1위를 지키던 넷마블의 ‘리니지2 레볼루션’을 밀어냈다. 이번 실적도 리니지M의 선전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실적에서는 분명한 성과를 거뒀지만 엔씨는 아직 만족할 단계에 있지 않다. 게임사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는 이르기 때문이다.

리니지M은 과거 리니지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향수를 노골적으로 자극한 게임이다. 게다가 내용 면에서 상당한 유료 아이템 결제를 필요로 해 이용자당 매출 발생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게임성보다 충성도 높은 이용자층과 과금 전략의 승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엔씨는 내년 이후 순차적으로 선보일 MMORPG 4종을 공개했다. 이 중 3종은 모바일 게임으로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 & 소울이라는 간판 타이틀을 다시 꺼내들었다. 장르를 보나 IP(지식재산권)을 보나 ‘가장 자신 있는 분야’로 승부를 내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경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넥슨은 이미 ‘액스’라는 타이틀로 강한 과금 유도 없이 선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준비 중인 ‘듀랑고’ 같은 다양한 도전을 이어갈 예정이며 게임빌의 ‘로열블러드’ 등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경쟁작들이 셀 수 없이 쏟아질 예정이다. 이는 과거 엔씨가 독주하던 PC 시장과는 다른 전개를 예고한다.

특히 엔씨가 준비 중인 ‘아이온 템페스트’, ‘블레이드 & 소울 2’ 등의 타이틀은 원작부터 역동적인 전투와 참신한 시스템으로 인기를 모았던 만큼 모바일에서도 단순한 IP 재활용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직 차기작의 윤곽도 나오지 않은 만큼 걱정은 다소 이르지만, 엔씨는 기존 IP나 익숙한 시스템에 의존한 성적보다 ‘정말 재미있는 모바일 게임’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과거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진화를 고민할 때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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