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안전법 제정됐지만 약물오류는 못 막아

환자안전법 제정됐지만 약물오류는 못 막아

의사 처방, 약사 조제, 간호사 투약, 모두 문제… “정부지원 절실”

기사승인 2017-11-24 00:01:00
2010년 5월, 당시 9세였던 故 정종현 군을 하늘의 품으로 보낸 일이 병원에서 벌어졌다. 정맥주사제인 ‘빈크리시틴’을 의료진이 척수강에 투여해 사망에 이른 사건이다. 그리고 2012년 40대 여성도 빈크리시틴 투약오류로 사망했다.

이에 환자단체연합회를 중심으로 청원운동이 확산됐고, 2016년 7월 정부과 의료기관 등의 역할을 규정한 환자안전법이 제정됐다. 정부는 국가환자안전위원회를 구성하고 5년마다 환자안전 종합계획을 수립해야한다. 

환자안전기준 정의, 지표개발 및 보급, 환자안전사고 자율보고ㆍ학습시스템 개발 및 배포도 수행하도록 언급하고 있다. 의료기관은 환자안전위원회를 설치하고 전담인력을 배치하는 한편, 자율보고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법 제정 1년여가 지난 지금도 법 제정의 단초가 된 약물오류는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일련의 문제가 의료기관 혹은 보건의료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는 모습이다.


서희정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팀장(사진)이 23일 열린 한국의료질향상학회 가을학술대회에서 공개한 약제오류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지난 9월까지 3060건의 자율보고가 이뤄졌다. 종별로는 종합병원이 1433건으로 가장 많았고, 상급종합병원이 1024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약물 오류는 28%인 857건이 발생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이 중 59.7%인 512건이, 종합병원은 34.5%인 296건이 보고됐다. 특히 연령이 낮아질수록 약물오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20세 미만 환자에게 발생하는 환자안전사고의 50%이상이 약물오류로 조사됐다.

약물오류의 유형으로는 의사 처방오류가 375건으로 43.8%를 차지했고, 간호사 투약오류가 293건으로 34.2%, 약사의 조제오류가 172건으로 20.1% 순으로 집계됐다. 

의사는 용량을 잘못 처방(42.4%)하거나 중복으로 처방(32.3%)하는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처방횟수나 일수 오류(13.3%)도 일부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간호사는 주사액을 누출(21.5%)하거나 환자(19.1%)나 용량(17.1%)을 오인하는 실수를 하고 있었다.

약사의 경우 약품을 착각해 다른 의약품을 조제(48.3%)하거나 조제 과정에서 용량을 잘못 반영(33.1%)하는 등의 오류가 보고됐다. 의약품의 부작용이나 약품 보관 오류는 전체의 2%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서 팀장은 “약물 오류 관련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약물에 관한 중대사건도 꽤 보고되고 있어 주의경고 발령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의 노력과 함께 식약처나 제약사의 용량표기 표준화 등 협의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약물오류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처방오류는 용량오류와 중복처방”이라며 “DUR 등 점검체계가 갖춰져 있지만 미흡한 점들이 보인다. 점검기제 보완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토론에 참여한 직역별 전문가들은 각 오류에 대한 나름의 방안과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병원약사회 나양숙 질향상위원회 위원장은 ▶조제 자동화 시스템 구축과 ▶약사 역할의 변화 및 제도적 지원을 강조했다.

조제오류의 다수를 자치하는 용량문제나 의약품 인식 착오 등은 전문성보다는 기계적 정확성이 요구되는 만큼 자동화를 통해 해소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다. 다만 약사의 전문성을 유지하며 약물교육 및 처방조정 등의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정책적ㆍ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삼성서울병원 김현아 QI팀장 겸 QI간호사회 학술이사는 “약제 오류는 환자안전사고에서 빈번히 발생하며 대부분이 의료진의 실수나 시스템 등 구조적 변수가 극복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라며 “의료기관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외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방오류 방지를 위한 ▶진료과별 처방 표준화 및 교육, 스크리닝 시스템 구축 ▶조제 자동화 ▶약제 투약기록 관리 및 투약정보 관리 프로그램 등에 대한 지원 ▶원활한 정보 교류 및 소통을 위한 체계 확보 ▶간호인력 등의 적절한 배치와 관리방안 마련을 제안했다.

이들과 달리 보건의료연구원에서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김수경 연구위원은 한국 보건의료체계와 환경에 맞춰 환자안전사고의 유형을 분류하고, 극복이나 예방이 가능한 요소와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 대한 구분이 선행돼야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김 연구원은 “자율보고에 따른 결과와 임상현장에서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외국과 국내 환자안전 관련 여건이나 환경, 문화는 굉장히 다르다”면서 “진실에 근접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인력 간 소통이나 정보교류 등이 적절히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한다”고 의료기관과 정부, 직역별 노력과 지원을 당부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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