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멱살 잡히면 괜찮고, 잡으면 문제인 사회

의사가 멱살 잡히면 괜찮고, 잡으면 문제인 사회

착한 의사, 윤리적 의사 찾는 사회단면에 회의감 토해내는 의사들

기사승인 2017-12-02 09:25:00
무릇 훌륭한 의사, 즉 대의(大醫)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을 안정시키고 뜻을 평정하게 하여, 바라거나 구하고자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먼저 큰 자비와 측은지심을 가지고 사람들의 고통을 구해 주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만약 병이 있어 치료받고자 하는 환자가 있으면 귀하건 천하건, 가난하건 부유하건, 나이가 많건 적건, 아름답건 추하건, 원한이 있건 친근하건, 동족이건 이민족이건, 지혜가 많건 적건 묻지 말고 모두 한마음으로 똑같이 자기의 부모와 형제처럼 생각해야 한다.

환자를 고치며 이것저것 생각하지도 말고, 자기에게 좋은 일이나 언짢은 일이 있어도 가리지 말아야 한다. 환자의 고통이 자신의 것인 양 깊이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험하고 가파른 길이나 낮과 밤, 추위와 더움, 배고픔과 목마름, 힘듦을 가리지 말고 한마음으로 달려가 구해주되, 능력을 자랑하거나 공적을 남기겠다는 마음을 갖지 말도록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백성들의 대의(大醫)가 될 수 있으나, 이와 반대로 하면 백성들을 해치는 큰 도적이라 할 것이다.

5세기 당나라 때의 명의(名醫) 손사막이 남긴 ‘대의정성(大醫精誠)’이란 글이다. 그리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이 꿈꾸는 의사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의사가 있을까’, 또는 ‘모든 의사가 이런 모습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조금 다른 문제로 보인다.

1일 의료윤리학을 공부하는 의료인들이 한국의료윤리학회 20주년을 맞아 추계학술대회를 열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최덕경홀에 모였다. 그리고 한국의 의료윤리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논의했다. 그 핵심에 “이국종 교수는 대의(大醫)인가, 범죄자인가”란 질문이 있었다.


◇ “모든 의사가 대의일 필요가 있을까?”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는 ‘의료윤리교육의 과제와 전망’이란 주제로 강단에 섰다. 그리고 현대사회를 “의사가 멱살을 잡히면 그럴 수 있다면서 의사가 환자 멱살을 잡으면 문제가 되는 사회”라고 운을 뗐다.

조선시대의 유교적 의식과 왕정체제의 사고관이 갑작스런 근대화와 급격한 사회ㆍ경제적 발전에 직면한 후 그에 맞춰 의식과 사고가 변화하지 못하면서 의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나 의료를 행하는 이들의 윤리의식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는 쓴 소리다.

권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계약관계다. 하지만 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적정 보수를 주고 치료를 받는다’는 개념은 없다. ‘내가 아프니 너는 치료해야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인식이 지배적”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언론에서 보여준 이국종 선생은 손사막이 언급한 대의와 흡사했다. 아픔을 나누고, 환자를 환자로만 대하며, 연간 10억원의 적자가 나도 무언도 바라지 않고 의술을 행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대의가 이야기 속 허구가 아닌 진짜 있었다고 인식하게 했다”고 우려했다.

손사막이 대의정성이란 글을 남긴 것은 그 시대에서조차 대의라고 칭할 이들이 없었기에 글을 보고 느껴 변화하라는 이상향을 설파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며, 지금 사회에 필요한 의사도 대의라는 영웅적 의사가 아닌 기본 소향을 갖춘 일반의사라는 설명이다.

또한, 급격한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해 철학적 배경이나 의식이 성숙하지 못해 의사가 멱살이 잡히면 그럴 수 있다고 용인되지만 의사가 멱살을 잡으면 천인공로할 일이 되는, 영웅적 의사가 의사의 표준이 돼버린 사회에 대한 한탄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나라에는 의료윤리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면서 “의학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고 의료윤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 의학을 어떻게 써야하고 어떤 고민과 가치판단, 선택을 해야 할지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일련의 인식과 부족함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윤리에 대한 개념과 정의, 내용을 꾸준히 정립하며 교육과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사회적 변화가 시작됨에 따라 의사도 사회도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일반의사가 어떤 의사이고 사람인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할 것”이라고도 강조하고 당부했다.


◇ 나라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해결하려는 나라

권 교수는 “나라님을 따라야 먹고 살 수 있었던 조선시대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며 “국가에 큰 권한을 주는 것이 잘 사는 길이고 근대라고 오인한다. 70만의 취업준비생이 공무원 준비에 열을 올리는 이유”라며 국민과 의료인 개개의 인식부족과 함께 국가 차원에서의 문제점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허대석 교수는 권 교수에 앞서 제도적 차원에서 한국 의료윤리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 언급하며 ‘법 중심, 국가 중심’의 규제적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쏟아냈다. 법이나 규정으로 통제하려는 의식이 앞서 사각지대와 현실적용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내 연명의료 관련법과 규정이 45쪽에 달한다. 반면 그 원류인 미국의 환자자기결정법(Patient Self-Determination Act)는 단 2쪽에 불과하다. 규정이 많아질수록 그 속에 여러 함정이 도사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차 규제적으로 가고 있다”며 규제가 아닌 자정과 내부적 지침 혹은 강령의 형태로 사회가 운영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련의 지침과 규칙을 정하며 그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권리와 의무 사이의 괴리, 의사와 환자 개개의 윤리의식과 사회인식에 대해 지속적인 고민과 논의가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저수가와 방어ㆍ최소진료, 인력의 처우와 근무여건, 비급여와 병원의 수익사업, 의료사고 간의 부정적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문직의 윤리, 그 과제와 전망이란 주제로 발표를 이어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유상호 교수도 전문직을 ‘소비자나 정부가 아닌 해당 직업의 구성원이 스스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직업’이란 정의로 구분하고 “암묵적 계약관계로 형성된 책무가 유지되기 위한 상호신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규정하고 규제하는, 대중이 바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 암묵적 사회계약에 따른 의사의 역할과 의무가 정립돼야하고 이를 규정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며 정해진 책임과 의무를 다 할 것이라고 신뢰하려는 의식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이국종 선생이 북한군의 몸에서 나온 기생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문제인지, 문제라면 어떤 점이 왜 문제인지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의료윤리에 대한 정립과 사회적 합의 혹은 동의가 있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지금의 혼란과 논쟁의 끝이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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